구정모 대구백화점(006370) 회장(사진)이 자녀와 손주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 9명에게 각각 주식 5만주씩을 증여했다. 주식 가치가 저평가됐을 때 증여세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구백화점 구정모 회장은 최근 자신의 주식 보유 지분 45만주(4.16%·종가 기준 약 45억원)를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 등 9명에게 5만주씩 증여했다.
최근 1년간 대구백화점의 주식 가치는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6월 16일 최고가 1만7950원을 기록한 후 하락세를 이어가다가 지난 11일에는 종가 기준 1만100원을 기록했다. 구 회장이 주식을 가족에게 증여한 이 날의 주식 가치는 최고가 대비 78%가량 떨어진 금액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대구백화점을 잠정 휴점하며 대구백화점의 주식 가치는 지속 하락했다. 구 회장은 아웃렛, 임대건물 등으로 대구백화점 건물을 활용하겠다며 체질 개선을 예고한 상태다.
향후 대구백화점이 본격적인 신사업을 시작하기 전 주식가치가 저평가됐을 때, 자신의 가족들에게 주식을 증여해 향후 세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구백화점은 2016년부터 한 번도 흑자전환하지 못한 채 영업손실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역시 영업손실 180억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정모 회장은 2015년생인 손주에게까지 주식을 증여하며 일가족 경영을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이번 구 회장의 주식 증여로 인해 장남인 구교선씨의 주식은 31만 8830주(2.95%)로 늘어났다. 차남인 구교준씨(2.81%), 장녀인 구혜인씨(1.70%)의 주식 지분율도 높아졌다.
구 회장은 며느리인 이지혜씨, 사위인 윤삼영씨 뿐만 아니라 손주인 구하나, 구신우, 윤지우, 윤현우씨에게도 각각 5만주씩 증여했다. 구 회장의 손주들은 2010~2015년생으로 모두 미성년자다.
미성년자에게 증여할 경우 2000만원이 넘으면 할증과세가 부과된다. 현행 세금 제도에서 직계존비속의 경우 성인은 5000만원, 미성년자는 2000만원만 증여세가 비과세된다. 기간은 10년간이다.
다만 구 회장과 같은 경우 성인인 자녀에게만 주식을 증여하면 추후 자녀가 주식을 손주에게 증여할 때 증여세를 두 번 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은 할증된 증여세를 내더라도 미성년자 손주에게 주식 증여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4세 경영권 승계를 계획함과 동시에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는 “상장회사의 경우 주식 가치가 떨어졌을 때 증여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며 “그만큼 세금 부담은 줄어드는데 미래 재산 가치는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오너들은 저가 시점을 되레 증여 시점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대구백화점 측은 향후 임대, 리모델링 등 수익 창출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미래 주식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현재 주가가 저렴한 편이라고 판단해 오너가 주식을 가족에게 증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백아웃렛에서 연간 임대료 50억원 정도를 받고 있고, 향후 사업을 다각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너가의 가족 주식 증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신사업 확장과 기업 규모를 키워 주주들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전문 경영인 체제 도입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자유시장체제에서 부의 대물림이 법적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식에게만 주식을 증여해야 한다는 80년대식 구태의연한 기업 문화는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저성장 기조에서 국제 경쟁력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