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대학생 조아라(22) 씨는 CJ올리브영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주문한 클렌징폼을 집 근처 매장에서 직접 찾았다. 택배 배송을 기다리느니 나간 김에 찾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먹거리와 거의 모든 생필품을 온라인에서 주문하면서 택배 상자나 포장재 등 각종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불편했다.
유통업계가 다시 픽업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오프라인 매장에 고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O4O(online for offline) 전략의 일환으로 ‘온라인 주문 후 매장 픽업’ 서비스를 일제히 도입했지만, 반응이 시원찮았다. 최근에는 배송 피로감을 느끼는 고객이나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시간대에 수령하려는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해 픽업 서비스를 늘리는 회사들이 많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004170)그룹 편의점 이마트24는 최근 모바일 앱에 예약구매 메뉴를 신설했다. 집 근처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앱에서 결제하고 원하는 시간에 찾아갈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한 주류뿐 아니라 도시락, 샌드위치는 물론 신선식품, 치즈, 물 등도 살 수 있다. 회사 측은 “시범 서비스 중이며 향후 상품 종류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라며 “점주들의 요청도 있었고,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편의점 후발주자인 이마트24는 그동안 배달 서비스 강화에 집중해왔다. 작년 신세계아이앤씨 출신 IT 전문가 김장욱 대표가 취임한 이후 배달 가능 매장을 1000개 이상으로 늘렸다. 이마트24보다 점포 수가 두 배 이상 많은 CU, GS25 등 경쟁사들도 네이버나 요기요, 자체 앱을 통해 배달을 강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마트24는 배달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근 슬로건을 ‘딜리셔스 아이디어’로 바꾸고 맛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마트24는 고객들이 예약구매라도 해서 사고 싶어 할 만한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다.
경쟁사인 GS25도 5월 요기요에서 원하는 제품을 산 뒤 원하는 매장에서 수령할 수 있는 픽업25 서비스를 선보였다. 작년 6월 GS샵에서 산 와인을 편의점에서 픽업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선보인 뒤 고객 반응이 좋아지자 이를 다른 품목으로 확대했다. 점주는 현재 재고가 있는 상품만 앱에 노출한 뒤 소비자 픽업 시간에 맞춰 상품을 준비하면 된다. 조리가 필요한 치킨 같은 경우 고객 대기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패션·뷰티 업계에서도 픽업 서비스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CJ올리브영은 지난 5월 온라인·모바일 주문 상품을 지정 매장에서 가져갈 수 있는 ‘오늘드림 픽업’을 도입했다. LF는 지난달 서울 압구정에 명품시계 편집숍 라움워치를 열고 온라인몰 LF몰에서 주문한 뒤 매장에서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무신사는 오프라인 매장 ‘무신사 스탠다드 홍대’에 픽업 서비스 ‘무탠픽업’을 선보였다. 매장 영업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제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택배 보관함처럼 생긴 픽업 라커를 설치했다. 무신사가 픽업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하루 평균 100명이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기업들의 픽업 서비스는 매장 체류 시간을 길게 만들려는 목적이 강했다. 매장 방문을 유도해 다른 상품을 경험하고 추가적인 매출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전략의 연장선상이었다. 최근에는 고객 편의를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방침)’가 가시화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가운데 배송에 피로감을 느끼는 고객도 늘고 있다. ▲주문 후 제품이 도착하기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불확실성과 ▲배송비 부담 ▲택배상자나 포장재 등 쌓이는 쓰레기를 피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픽업을 택하고 있다.
무신사 관계자는 “어차피 매장에 방문하는데 거기서 주문·결제하고 가져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고객들은 온라인에서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고 매장에서 픽업하는 것을 아예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원하는 제품이 매진될까 걱정할 필요 없이 미리 주문해놓고, 여유있게 원하는 시간에 찾아가는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느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