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유통 기업들을 사모펀드들이 쓸어담고 있다. 유통 대기업들은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따져야 하지만, 사모펀드들은 재매각과 투자수익만 고려하면 돼 공격적인 M&A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사모펀드들이 유통기업 인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도 관련이 있다. 코로나19와 이커머스(전자상거래)의 급성장이 맞물리면서 유통산업의 판도가 격변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재 기업은 몸값을 올리고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짜기에 수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샘의 플래그십스토어인 디자인파크 서울 잠실점. /유한빛 기자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가구업체인 한샘(009240)은 최근 IMM프라이빗에쿼티(PE·Private Equity)에 경영권을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주관사를 선정하지 않고 경쟁입찰 등 절차를 생략한 채 IMM PE와 직접 협상에 나섰다.

한샘 인수자로 등장한 IMM PE는 1999년 설립된 한국 사모펀드인 IMM인베스트먼트의 계열사다. IMM PE는 이전에도 성공적으로 투자를 마무리한 사례들이 있다.

지난 2013년 토종 카페 프랜차이즈인 할리스커피를 보유한 할리스에프앤비를 450억원대에 인수해, 식사 메뉴 다각화와 브랜드 상품 강화 등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할리스에프앤비의 지분 약 94%를 1450억원에 KG그룹에 매각했는데, 유상증자로 투입한 370억원을 감안해도 상당한 차익을 거뒀다.

한샘 뿐만 아니다. 올해 롯데GRS는 1세대 패밀리 레스토랑인 TGIF를 어펄마캐피탈(옛 스탠다드차타드PE) 산하의 엠에프지코리아(MFG KOREA)에 매각했고, 남양유업(003920)도 사모펀드에 팔렸다.

현재 진행 중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매각에는 치킨 프랜차이즈인 bhc와 대신프라이빗에쿼티(대신PE)·유안타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 맞붙었다. 매각 주체는 최대주주인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로, 마찬가지로 사모펀드 운용사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매각을 추진하는 배달앱 2위 요기요의 유력 인수 후보도 사모펀드 연합이다.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신세계그룹이 발을 빼면서 MBK파트너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 퍼미라, 베인캐피털 등이 인수적격 후보로 남았다. 최근 DH는 어피니티·퍼미라·GS리테일(007070) 컨소시엄과 단독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투자수익 노리는 사모펀드, 경영 성과 빠른 소비재 기업 관심

유통업계에서는 대기업과 사모펀드의 사업구조상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기업의 재무구조나 주가 관리, 자금조달 등의 부담이 덜한 사모펀드는 브랜드 인지도를 갖춘 매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만, 대기업의 경우 대형 M&A 건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초 신세계와 SK, 롯데의 치열한 삼파전을 예상했던 이베이코리아 인수전도 사실상 신세계그룹의 단독입찰로 끝났다.

사모펀드들이 식음료(F&B)나 화장품 등 소비재 기업을 주로 사들이는 이유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 장벽과 브랜드 관리·마케팅으로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기 용이한 점이 꼽힌다.

통상 사모펀드는 인수한지 3~7년 안에 매출, 영업이익 등 실적을 개선해 매각한다. 기술력이 중요한 정보기술(IT)기업이나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중공업 등은 사모펀드의 투자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 유통업체들은 매장 구조조정이나 메뉴 재편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쉽고, 신메뉴를 출시하거나 광고 모델을 기용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면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다. 프랜차이즈 외식업체의 경우에는 가맹점 수를 늘려 몸집을 키우기도 쉽다.

◇ 버거킹·아웃백, 사모펀드가 성장 한계 기업 부활시킨 선례도

사모펀드만의 강점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업 포트폴리오나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 주주들의 반발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대기업들보다 목적성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회사 자체가 아닌 재매각을 통한 차익 실현이 목표인만큼,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띄우는 실력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 치킨·버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 운영사인 해마로푸드서비스도 사모펀드 케이앤엘파트어스에 매각됐다. 주인이 바뀐 맘스터치 메뉴판에서는 수익성이 적은 메뉴는 단종되고, 대표제품인 ‘싸이버거’ 등의 가격이 인상됐다. 신메뉴의 가격대도 1만원대로 높아졌다. 이 덕분에 지난해 맘스터치의 매출은 크게 변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할리스커피의 드라이브스루 매장 전경. /할리스커피 제공

현재 글로벌 사모펀드인 어피니티가 보유한 버거킹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은 지난 2012년 국내 사모펀드 VIG파트너스에 버거킹을 1100억원에 매각했고, VIG파트너스는 버거킹 운영사인 비케이알을 2016년 어피니티에 2100억원에 매각했다. 어피니티는 가성비 메뉴 등을 출시하고 매장 효율화를 진행해 버거 프랜차이즈 1위인 맥도날드와 격차를 줄였다.

스카이레이크 역시 아웃백스테이크를 지난 2016년 570억원에 인수, 대대적인 사업 재구성을 진행했다. 고급 메뉴를 출시하는 한편, 배달서비스를 도입해 실적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매출은 약 2978억원, 영업이익 237억원으로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그 덕분에 아웃백스테이크의 예상 매각가는 2000억원대로 뛰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은 “이커머스가 발달하면서 유통기업들도 시장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 위한 자본력이나 제휴 능력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전문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는 사모펀드들이 장기적인 안목은 부족할 수 있지만, 경영효율화나 전문화 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