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주공아파트./마티

1971년 4월 11일 조선일보 1면 하단에는 민주공화당의 제7대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박정희의 정치 구호가 담긴 광고가 실렸다. 이 광고는 미소 짓는 농부의 환한 미소와 아파트 단지 내 잔디밭에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부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아파트는 현실이 됐다. 박정희 정부의 기획으로 준공된 마포주공아파트다. 5·16 쿠데타로 집권 이후 괄목할만한 성과가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 입장에서 1000세대를 수용하는 마포주공아파트는 당면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생활 혁명의 본보기로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한국이 만들어낸 가운데 ‘아파트단지’만큼 한국인의 삶을 좌우하는 상징성을 가진 물건이 있을까. 그 시작점에 마포주공아파트가 있다. 아파트의 탄생은 새 정치 세력과 맞닿아 있다. 서울 시민들의 눈앞에 새로운 정치 세력의 능력을 드러내는 데 새로운 주택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주택 유전자’를 쓴 고(故) 박철수 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의 유작인 신간 ‘마포주공아파트’는 한국 아파트단지의 원형인 마포주공아파트의 준공과 전방위적 파급 효과를 파헤친다.

저자는 책에서 권력 이데올로기 프로젝트로 시작된 마포주공아파트의 시작부터 1992년 국내 최초 아파트 재건축과 재탄생까지의 연대기를 낱낱히 보여준다. 이 Y자형 임대아파트는 지어진 지 올해로 정확하게 62년이 됐다. 단지 내 인프라를 입주자가 부담하는 방식, 임대가 아닌 분양, 30년 후 재개발 등 한국 아파트단지의 특징은 모두 이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이후 한국은 여전히 마포주공아파트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1963년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2년 후 선거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다. 마포주공아파트는 군부의 능력을 과시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모델이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쿠데타의 주요 인물이었던 장동운은 1961년 5월 대한주택영단(현 LH공사의 전신) 이사장에 취임한다. 취임과 동시에 장동운은 서울 안에 고층, 단지식 아파트를 건립할 계획을 세운다. 이전까지 아파트는 충정아파트처럼 도시 가로에 면한 한 동짜리 5층 내외의 집합주택이었다. 그의 계획은 중앙난방을 공급하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0층 규모의 아파트를 단지로 구성해 1000세대를 수용하는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1962년 당시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불가능했기에 1963년 이전에 구현돼야 했다. 저자는 책에서 “혁명의 주체는 무능한 이전 정부와 다르다는 시범을 보여야 했기에 아파트를 지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형태가 된 계기 중 하나는 임대아파트를 분양 전환하면서다. 1964년 최종 준공이 이뤄진 마포주공아파트는 모두 임대 아파트였다.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시도된 정부 주도의 집합주택은 모두 임대주택이다. 공공 주택을 통한 시장 안정과 도시의 공공성 담보를 위해 건설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부가 주택을 관리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1967년 자금난을 겪던 대한주택공사는 마포주공아파트를 분양하기로 결정한다. 이 전환은 한국의 주택공급과 아파트의 역사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이후 한국의 거의 모든 아파트단지는 분양을 전제로 개발된다. 이 시점 대한주택공사는 아파트만 공급하기로 결정한다. 저자는 “아파트단지만 건설하고 모두 분양하기로 한 이 결정은 이후 한국 주택 공급의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고 설명한다.

20세기 한국의 주거 형태는 마포주공아파트가 표본이 된다. 마포에서 시작된 아파트단지의 인기는 서울 이촌동, 반포를 거쳐 잠실에서 완성된다. 최초의 아파트단지였던 마포주공아파트가 최초의 재개발 아파트단지가 되며 재개발 신화를 이어갔다.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상징성이 크다. 아파트 가격이 정권의 명운, 개인의 인생을 좌우하며,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계층 재생산, 입시와 교육체계를 좌우하는 결정적 인자가 됐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건축적으로 비슷한 유형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한국과 유사한 아파트단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저자는 “늦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은 한국의 최대 발명품은 아파트”라고 평한다.

마포아파트 체제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불가능할까.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권력은 그 나름의 공간구획 방식을 가진다”고 말했다. 저자는 책에서 그의 말을 떠올리며, “나름의 공간구획 방식이란 국가와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여러가지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반공주의와 발전주의, 여기에 권위주의가 결합한 박정희 정권에서 탄생한 마포아파트 체제는 곧 대한민국의 공간 생산 방식이자 규범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해석한다.

한국은 여전히 아파트 공화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63%에 달한다. 이러한 체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할까. 저자는 “대한민국에 ‘아파트의 날’을 이름 붙여 기념일로 삼고 ‘과연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논의하는 날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다.

박철수 지음ㅣ마티 ㅣ350쪽ㅣ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