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80대 오모씨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보유 자산 일부를 미리 증여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올해 초 아내가 사망한 후 먼 얘기 같았던 상속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씨는 증여 절차 등을 알아보던 중 ‘자산이 10억원 이하면 상속세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재 오씨가 보유 중인 자산은 시가 6억원 아파트와 2억원 상당의 토지, 예·적금 2억원이다. 그렇다면 사전 증여가 아닌 상속을 하는 것이 절세 측면에서 무조건 유리한 것일까. 상속·증여 전략을 어떻게 짜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된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갖고 있어도 상속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서울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거래금액은 11억8618억원으로, 흔히들 상속세 과세 기준으로 알고 있는 1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상속세가 더는 ‘부자들의 세금’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상속세를 낮추기 위해 오씨와 같이 미리 자산을 사전 증여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 상속 무조건 10억 공제?…배우자·자녀 유무에 따라 달라

사전 증여 여부를 결정하기 전 상속 시 얼마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지 가늠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 증여보다 상속 시 적용되는 공제 항목이 더 많고, 공제 한도도 높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이 보유한 자산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어떤 공제 항목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만 파악하면 대략적인 계산을 할 수 있다.

상속세는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순자산-공제 총액)’에 자산 구간별 ‘세율’을 곱하면 된다. 오씨의 경우 별다른 빚을 지고 있지 않다면 순자산은 10억원이다. 공제 총액은 5억4000만원으로, 과세표준은 4억6000만원(10억원-5억4000만원)이 된다. 여기에 세율 20%를 곱하면 오씨의 아들이 내야 할 세금은 약 8200만원(누진공제 1000만원 차감)이다.

이 사례에서 적용된 공제 항목은 ‘일괄공제’ ‘금융재산 공제’다. 일괄공제는 특별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5억원 공제해준다. 금융재산 공제는 채무를 뺀 순금융 재산가액이 2000만원 이하인 경우 전액을, 2000만원을 초과하면 최대 2억원 한도로 재산가액의 20%를 공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오씨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2억원으로 이중 20%인 4000만원이 공제됐다.

오씨의 예상과 달리 공제 총액이 10억원이 아닌 것은 배우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배우자 상속 공제’는 기본적으로 5억원이 공제되고, 상속금이 5억원이 넘을 경우엔 법정상속지분(법적으로 보장된 상속분)까지 30억원을 한도로 공제해 준다. 만약 오씨의 배우자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상속 시 내야 할 세금은 0원이 된다. 반대로 자녀가 없고 배우자만 있다면, 공제 금액은 기초공제(2억원)를 더한 최대 32억원이다.

그래픽=정서희

◇ 증여 세금 더 내도…“자산 가치 오르면 손해 아냐”

오씨가 상속세 공제 한도를 고려해 아들에게 시가 6억원의 아파트만 먼저 증여하면 내야 할 증여세는 1억원가량이다. 만약 고령자인 오씨가 증여 후 10년 내 사망하면 세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세법에서는 상속일(사망일)로부터 10년 이내 증여한 자산은 상속재산에 합산해 상속세를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씨가 증여한 지 10년이 지나 사망한다면 상속세가 부과되는 자산은 4억원뿐이지만, 10년 내 사망하면 10억원에 상속세가 매겨지는 것이다. 이때 이미 낸 증여세는 상속세에서 차감된다.

절세 측면에서만 보면 상속이 더 유리한 상황이나, 그렇다고 증여가 무조건 불리한 것은 아니다. 현금이 아닌 부동산·주식을 증여하고 이후 가격이 크게 오를 경우 10년 내 상속이 발생하더라도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증여한 부동산 등은 상속일 기준 시가가 아니라 증여 당시 시가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오씨가 아들에게 증여한 아파트가 10년 내 6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12억원 아파트와 나머지 토지·금융자산(각각 2억원)을 상속하면 오씨의 아들은 5억원가량을 상속세로 내야 하나, 사전 증여 후 상속 시 증여재산은 6억원으로 고정돼 10억원에 해당하는 자산에 대한 상속세만 내면 된다. 이때 매겨지는 상속세는 약 8000만원이나, 앞서 납부한 증여세를 차감하면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은 없다.

전문가들은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은 사전 증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노대희 신한PWM강남센터 팀장은 “10년 내 상속 등 예측 못 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자산은 사전 증여를 하는 것이 절세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노 팀장은 “증여자가 고소득자일 경우에는 증여 후 소득 분산으로 종합소득세 절세효과를, 빌라·상가 등을 증여 시 증여받은 사람은 임대료 등의 부가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라며 ”자산의 성격을 따져 사전 증여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