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판교 운중동의 상가주택 단지. /조선일보DB
서울에 사는 80대 김상준(가명)씨는 거주하는 아파트와 노후 수입이 나오는 시세 30억원 정도의 상가주택 건물을 갖고 있다. 한데 몇 년 전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은 후 다급하게 세무사를 찾았다. 당시 정부가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다(多)주택자의 보유 부담을 늘리면서 ‘세금 폭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김씨가 보유세 부담을 피하고, 자녀의 증여세 납부 자금까지 마련할 방법은 없을까.

고가의 건물을 가진 사람은 자녀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할 때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건물을 파는 경우도 많다. 김씨처럼 거주하는 집 외에 다세대주택이나 상가주택을 보유할 경우 다주택자 중과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러 세무사와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 건물 보유자들에게 토지와 건축물을 분할해 자녀에게 증여하도록 조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토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건축물을 우선 증여해 세금 부담을 줄이고, 자녀는 임대 소득을 모아 토지까지 받을 때 내야 할 증여세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다주택자에게 부과되는 세금까지 줄이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 건물만 받고 임대료 모아 2차 증여세 자금 마련

상속·증여세를 산정할 때는 공시 가격이 아닌 실거래가가 기준이 된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집합 건물은 인근 주택의 거래 가격이 기준으로 활용되지만, 건물이 대상이 될 경우 별도의 감정 평가를 받아야 한다.

김씨가 소유한 상가주택 건물 가격은 감정 평가를 통해 30억원으로 산정됐다. 그의 건물은 20억원 상당의 토지와 10억원의 가치를 가진 지상 건축물로 구성된다. 이 건물에는 대출 등 5억원이 채무로 잡혀 있으며, 매달 1000만원의 임대 수익이 나온다.

김씨는 이밖에 거주하고 있는 서울 소재 아파트도 보유했다. 증여를 받아야 할 아들은 직장인이며, 그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은 없는 상황이다.

만약 김씨가 상가주택을 통째로 증여할 경우 아들은 누진 공제액을 제외하고 9억8000만원이라는 거액을 증여세로 내야 한다. 30억원에서 채무 5억원과 증여 기본 공제 5000만원을 뺀 24억5000만원이 과세 표준이 되는데, 여기에 세율 40%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김씨의 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만약 과세 표준이 30억원을 초과하는 건물일 경우 세율 50%가 적용돼 증여세는 15억원 이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아들에게 토지를 제외한 건축물만 증여할 경우 세금 부담은 훨씬 줄어든다. 건축물 가격인 10억원에서 채무와 기본 공제를 제외하면 과세 표준은 4억5000만원이 된다. 5억원 이하를 증여할 경우 세율은 20%가 적용되기 때문에 김씨의 아들이 짊어져야 할 세금 부담은 9000만원에 그친다.

물론 김씨의 아들이 건물 전체의 소유권을 넘겨 받기 위해선 남은 토지에 대한 증여세를 내야 한다. 여기서 토지와 건축물 분할 증여의 효과가 커진다. 건축물 소유권을 먼저 받은 김씨의 아들이 임대 사업자로 등록한 후 해당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를 챙겨 토지에 대한 증여세 납부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거주하는 집이 따로 있으면서 다세대주택이나 상가주택 등 주택이 포함된 건물을 소유한 사람의 경우 보유세 부담도 줄일 수 있다.

HM세무회계의 이희민 세무사는 “윤석열 정부 들어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비싼 부동산을 2채 이상 소유한 사람은 종부세와 재산세로 많은 돈을 내야 한다”면서 “최근 몇 년간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녀에게 건축물 명의를 이전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 토지 사용료 지급해야…땅값 상승 여부도 변수

건축물 명의를 넘겨 받은 자녀가 임대 수익을 얻을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자녀는 새롭게 임대인이 되면서 동시에 부모에게 토지를 빌려 사업을 하는 임차인이 된다. 만약 부모에게 토지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해 다시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법인세법에 따르면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토지 사용료는 기준 가격의 50%에서 임대 보증금을 차감한 후 정기예금 이자율을 적용해 정해진다. 만약 김씨의 건물에 보증금이 없고 현재 정기예금 금리가 3%라면 그의 아들은 연간 3000만원을 토지 사용료로 내야 한다.

결론을 내면 김씨의 아들은 매년 1억2000만원을 벌고 3000만원을 김씨에게 지급해 총 9000만원의 소득을 얻게 된다. 1년 만에 건축물 명의를 넘겨 받기 위해 낸 증여세만큼 수익을 얻고, 몇 년간 모으면 토지에 대한 증여세 자금까지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땅값이 빠르게 상승하는 지역에서는 건축물 분할 증여의 효과가 줄어든다. 일정 기간 자녀가 임대 수익을 축적해도 땅값이 더 크게 뛸 경우 나중에 토지 증여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발이나 교통 호재 등으로 땅값 상승이 예상되는 경우 반대로 건축물 대신 토지를 먼저 증여하는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