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태재대 총장 - 고려대 행정학 학·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연세대 교육학 명예박사, 일본 와세다대 법학 명예박사, 전 고려대 총장 /사진 태재대

"21세기 대학은 지식을 주입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문제를 정의하도록 하는 곳이어야 한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시대 대학 교육의 본질적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산업화 시대 대학이 대량생산 체제에 맞춰 표준화된 인재를 길러냈다면, 이제는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만큼 대학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기존 대학이 강의실에서 교수 설명을 듣고 시험으로 줄 세우는 구조라면, 앞으로 대학은 토론·프로젝트·문제 해결 중심의 능동 학습(active learning) 체제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 총장은 고려대 총장을 지냈고, 현재는 혁신형 대학 모델을 표방하는 태재대를 이끌고 있다. 태재대는 전공 칸막이를 최소화하고, 기숙사 공동생활과 온라인 글로벌 수업, 해외 순환 학습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대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업하면 안정된 삶이 보장된다는 20세기 공식은 이미 무너졌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AI 시대가 오면서 대학 교육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많다.

"문명사 자체가 바뀌고 있다. 그런데 대학 시스템은 아직도 20세기 산업사회에 맞춰져 있다. 당시에는 대량생산 체제였기 때문에 일을 잘게 나누고, 조직에서 한 가지 기능만 잘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대학도 그런 인재를 길러내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나 피지컬 AI가 훨씬 잘하는 시대다. 학부에서 전공 하나 배우고 회사에 들어가 30년 먹고사는 모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학 졸업장만으로 미래를 보장받는 시대가 아니다."

좋은 대학의 학위도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고 보나.

"이미 해외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학위는 '가문의 영광' 정도의 상징은 될 수 있어도 실질적 효용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를 나왔느냐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실제로 기업도 예전처럼 학벌만 보지 않는다. 능력이 있으면 고졸이든 대학 중퇴든 뽑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기존 대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학부 교육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대학 평가는 연구 실적으로 이뤄지고, 교수도 논문과 대학원 지도에 집중한다. 학부 수업은 교과서 설명하고 중간·기말고사 보는 방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학생은 외워서 시험 보고, 시험 끝나면 잊어버린다. 그런 방식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스마트폰에 이미 정보가 넘치는데, 왜 학생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하는 데만 집중하나. 대학은 지식 암기가 아니라 활용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다면 AI 시대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질문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정답 맞히는 교육을 너무 오래 했다. 교수나 교사가 문제를 내고 학생은 정답만 찾았다. 그런데 이제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챗GPT 같은 AI에 무엇을 물어볼지 아는 사람이 경쟁력이 있다. 공부는 노동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있어야 능동적으로 배우고, 스스로 탐구하게 된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태재대 정문. /사진 태재대

태재대는 이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나.

"모든 수업을 능동 학습 방식으로 운영한다. 학생이 토론하고, 전략 게임을 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교수는 일방적으로 강의하지 않는다. 꼭 설명이 필요하면 사전에 녹화해 학생이 보고 오게 한다. 수업 시간 100분은 토론과 프로젝트에 쓴다. 우리는 '러닝 바이 유징(Learning by Using)'을 강조한다. 외우는 학습이 아니라, 직접 실행해 보면서 배우는 것이다. 직접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울러 태재대 학생은 미국, 일본,중국, 러시아 등 해외 대학 및 기관의 교육과정도 병행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외 대학 커리큘럼에 맞춰 9월에 입학한다. 다만 3월부터 토론 및 제2 외국어 교육 등을 미리 진행해 학생이 새로운 학습 방식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

평가는 어떻게 하나. 시험이 없으면 공정성 논란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상대평가 중심 시험을 보지 않는다. 대신 기말 프로젝트, 영상 제작, 보고서 제출 등으로 평가한다. 학생이 얼마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냈는지, 문제를 비판적으로 봤는지, 팀과 협업했는지 본다. 또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학생이 몇 분간 발언했는지, 얼마나 토론에 참여했는지도 데이터로 확인한다.앞으로는 AI가 발언 내용을 분석해 창의성·논리성까지 평가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기존 대학과는 다른 수업 방식에 교수 역할도 달라질 것 같다.

"그렇다. 교수는 더 이상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코치이자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조력자)다. 축구 감독이 직접 뛰지 않듯, 학생이 잘 뛰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교수 채용 후에도 액티브 러닝 훈련을 시킨다. 100분 수업이면 3분, 5분, 10분 단위로 무엇을 할지 수업 설계도를 짜야 한다. 연구만 잘한다고 좋은 교수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

태재대는 전공 구조도 독특하다.

"기존 대학처럼 학부에서 전공 하나에 갇히는 방식은 맞지 않는다. 우리는 인문·사회, 자연과학, 데이터사이언스·AI, 비즈니스 혁신 등 네 영역을 넘나들며 학생이 조합한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에너지와 정책, 과학과 윤리처럼 융합형 과목도 많다. 21세기 인재는 축구로 치면 한 포지션만 뛰는 선수가 아니다. 박지성·손흥민처럼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는 '토털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대기업 취업률'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한다.

"가장 크게 바뀌어야 할 곳 중 하나가 기업 HR(인적자원) 시스템이다.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하지만 대기업도 이미 신입 공채보다 경력·역량 중심 채용으로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는 스타트업과 글로벌 경쟁이 심해진다. 학벌 중심 선발로는 기업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 대학생에게 조언한다면.

"미래를 살아야 한다. 18~19세 때 어느 대학 갔는지가 100세 인생을 결정한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단순 반복 업무는 이제 AI가 더 잘하기 때문에 소위 말해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장은 10년도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명문대 졸업장이 남은 인생을 책임지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시대는 끝났다. 대학에서는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한다. 비판적 사고, 창의성, 협업 능력, 자기 주도성 같은 역량이다. 창업을 해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