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에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9명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양혁 기자

“처자식 먹여 살리려 매일 힘들게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비명횡사한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이 길도 매일같이 내가 출퇴근하며 오가는 길인데, 만약 내가 그때 회식하고 집 가고 있었더라면…. 이 사람들 말고 내가 당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네요.”

3일 오후 6시50분쯤 서울 중구 북창동 보도에서 만난 김학수(54)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굳은 얼굴로 사고 현장에 놓여져 있던 소주병을 들어 국화꽃 근처에 술을 부었다. 아들, 딸 두 명의 자녀를 둔 김씨는 “돌아가신 분들이 다 내 또래라 너무 안타까워서 술 한번 부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가 발생한 중구 세종대로18길 보도는 시민들이 희생자를 기리며 자연스레 추모 장소가 됐다. 회식을 한 직장인들이 식당에서 잠깐 밖으로 나온 사이 가드레일을 넘어 날라온 차에 치인 현장에 시민들은 국화꽃을 놓으며 넋을 기렸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에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9명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양혁 기자

이렇게 쌓인 국화꽃이 300여개. 희생자들은 ‘승진 축하 기념 회식’ ‘수상 기념 회식’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그런 고인들의 속을 이제라도 풀어주려는 듯 숙취해소제가 사고 현장 보도 위에 놓였다. 직장인들의 ‘생명수’인 비타민 음료와 자양강장제, 커피도 있었다.

한 은행에서 일하는 이모(28)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씨는 “고인이 되신 분과 일면식은 없지만,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다”면서 “퇴근하는 길에 잠시 들렸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현장 가로수 밑에 준비해 온 국화꽃을 두고 묵념을 한 뒤 자리를 떴다.

이제 세상에 없는 이들을 생각하며 적은 손편지도 사고 현장에 10장 놓였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오늘 아침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아침부터 1시간 반 거리를 운전해 학교에 데려다 주신 아빠께 감사 인사를 할 기회를 마련해 주심에 감사드린다”며 “그곳에서는 여기서 못 누렸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사시길 바라며, 유가족분들도 평화와 안심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했다. 연습장을 뜯어서 붙인 이 종이는 비를 맞아 군데군데 물이 젖어 있었다. 또박또박 써내려 간 글씨 아래로는 흰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에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9명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양혁 기자

사고로 직원 2명을 잃은 서울시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부와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울시청 본관 7층에 추모 공간을 설치했다. 본관 7층은 이번 사고 희생자 중 한명인 김인병씨가 팀장으로 근무했던 청사운영팀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지난 1일 발생한 이번 사고로 9명이 숨졌고 7명이 다쳤다. 희생자 9명 중 4명은 시중은행 직원이고, 2명은 서울시청 직원, 3명은 병원 용역 업체 직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