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식구를 부양할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을 떠나 충남 서산으로 온 지 2개월차인 팜 후이(38)씨는 지난 12일 설날 연휴를 맞아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다 진땀을 흘렸다. 현금이 없다는 이유로 버스 기사는 승차를 거부했고, 택시 기사도 거스름돈이 없다는 이유로 계좌이체나 카드 결제만 받았다.

후이씨는 “통신비 절감을 위해 저가 모바일 데이터 요금제를 이용하다 보니 계좌이체가 어렵고, 국적 탓에 본인 인증도 번거롭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현금 없는 버스 안내 현수막이 붙은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뉴스1

외국인과 고령층이 시내버스를 비롯해 택시 등 대중교통 탑승 요금 결제 방식 변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금을 대체하는 카드 결제나 계좌 이체 같은 수단을 마련할 여력이 되지 않거나, 익숙치 않은 영향이다.

관광 목적으로 서울에 온 포르투갈 국적 아말리아 피사노(31)씨는 “010으로 시작하는 한국 전화번호가 없어 이동해야 할 때 불편을 겪고 있다”며 “승차공유 서비스인 ‘우버’는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는 데다 운전기사들과 소통이 어려워 매번 한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스마트폰 계좌이체가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은행 업무를 대면으로만 보는 고령층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도움으로 최근에 교통카드를 만든 박모(68)씨는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기 힘든 사회다”며 “카드를 놓고 다니는 것도 부지기수고 제때 카드를 충전하는 것도 번거롭다”고 설명했다.

'현금 없는 버스' 안내문.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

서울시는 요금 운용에 따라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줄이고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시내 버스 현금함 감축에 나섰다. 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현금 없는 버스는 지난해 1월 108개 노선, 1876대다. 이는 기존 18개 노선, 436대와 비교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체 서울 은행 버스 25%는 현금 없는 버스”라고 설명했다. 서울 버스 4대 중 1대는 현금으로 탑승할 수 없다는 의미다. 탑승 시 교통카드, 신용카드 또는 운수회사 계좌번호로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현금이 사라지는 사회에서 현금 없는 버스의 확대는 방향적으로 맞지만, 현금만 있는 외국인이나 디지털 취약 계층을 고려해 대안을 함께 세워야 한다”며 “버스 정류장 주변 편의점에서 일회성 교통카드에 대한 홍보를 활성화하고 후불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 관계자는 “소외 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모니터링하면서 지원하는 방안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