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방문한 서울시 종로구 광장시장 모습. /최정석 기자

“삼촌 와서 앉아요. 순대, 떡볶이, 전 다 있어요”

주말이었던 지난 14일 서울시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은 점심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지나가는 손님들을 자리에 앉히려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 사이로 일본어, 중국어도 겹쳐 들렸다. 유럽에서 온 듯한 외국인도 지나가는 사람들 8~9명 중 1명꼴로 섞여 있었다. 얼마 전 ‘바가지 논란’이 일었던 장소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광장시장은 지난해 11월 한 유튜버가 전집에서 바가지를 당했다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지며 논란에 휩싸였다. 1만5000원짜리 모둠전을 시켰는데 그릇 위에 나온 전은 10개를 조금 넘긴 양이었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불친절했던 상인 태도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상인회는 논란이 커지자 해당 노점에 영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렸다. 이어 상인 100여명을 모아 반성 대회까지 열며 변화를 다짐했다. 이들은 적정한 가격에 적정한 양을 제공하는 가격 표시제 준수를 약속하며 가격과 친절, 위생을 다 잡겠다고 강조했다.

14일 방문한 광장시장의 한 분식점 가판대에 실제 음식 대신 음식 모형이 진열돼있다. 이 식당 주인인 60대 여성 박 모씨는 사비 50만원을 들여 모형을 만들었다. /최정석 기자

2달 뒤 방문한 광장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음식 모형’이었다. 대부분 노점이 잡채, 김밥, 국수, 족발 등 모형을 가판대 주변에 올려둔 채 장사를 하고 있었다.

상인들이 위생 문제를 고려해 실제 음식 대신 모형을 올려둔 것이다. 20년 넘게 분식집을 운영한 60대 여성 박모씨는 “음식들을 밖에 꺼내두면 계절에 따라 쉽게 상하지 않겠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라며 “상인들이 그런 지적에 공감해 사비를 들여 음식 모형을 주문 제작해 전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50만원을 들여 잡채, 김밥, 국수, 머릿고기 모형을 제작했다고 한다.

손님들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날 광장시장에서 만난 윤수빈(25)씨는 “야외 가판에 올려둔 음식을 바로 퍼주면 아무래도 좀 깨름칙한데 모형만 올려두는 건 좋은 생각 같다”며 “전통시장은 위생 문제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이렇게 모형을 활용하는 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왼쪽은 지난 14일 방문한 광장시장의 한 노점상에서 1만5000원을 주고 산 모둠전. 오른쪽은 지난해 11월 광장시장 바가지 논란을 일으킨 1만5000원어치 모둠전. /최정석 기자

바가지 논란의 중심에 있던 모둠전도 변했다. 우선 한눈에 봐도 양이 늘어났다. 논란이 된 1만 5000원어치 모둠전에는 전이 10개 조금 넘게 들어있었다. 반면 이날 시킨 모둠전에는 20개 남짓한 양이다. 또 메뉴판에는 모둠전 옆에 ‘600g’이라는 정량 표시도 있었다.

주변 상인들은 노점상들이 변화에 협조적인 모습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60년간 광장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추귀성씨는 “노점 한 곳에서 문제가 생겨 안 좋은 소문이 돌면 이곳 상인들이 전부 피해를 본다”며 “이번 사건이 다들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방문한 광장시장의 한 노점상 메뉴판에 모둠전 정량이 600g이라 표시돼있다. 모둠전 이외에 다른 메뉴 옆에는 정량이 표시돼있지 않았다. /최정석 기자

다만 모둠전을 빼면 메뉴판에 음식 중량을 표기한 사례가 없었다. 모둠전을 파는 식당도 모둠전 이외에 떡볶이, 순대와 같은 음식 옆에는 중량을 표시해 두지 않았다. 이날 광장시장에서 만난 방문객 중 모둠전을 먹지 않은 사람들이 “(논란 이전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내놓은 이유다.

서울시와 상인회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모둠전부터 시작해 올해 상반기 안에 정량 표시제를 광장시장에 단계적으로 정착시킬 계획”이라며 “광장시장 상인회, 종로구청 등과 함께 협의하며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