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 근무가 20년 만에 격변을 맞고 있다. 감염병 확산으로 시행됐던 재택근무와 화상회의와 같은 새로운 근무 형태가 시발점이었다. 정보기술(IT)과 같은 한정적 분야에서 가능할 것만 같았던 주 4일제는 제조업, 서비스업으로도 확산할 조짐이다. 조선비즈는 주 4일제를 경험한 근로자, 기업과 전문가를 통해 한국의 주 4일제 적용 현황과 전망을 3편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휴넷은 지난 2022년부터 주 4일제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휴일인 금요일 휴넷 사무실이 비어 있는 모습. /휴넷

금요일, 직원 약 400명 중 출근한 인원은 40명 남짓. 전체 인원 중 10%도 채 되지 않는다. 기업교육 전문 기업 휴넷의 풍경이다. 이곳은 금요일이 주말이다. 이른바 월화수목’토토일’ 또는 ‘월화수목토일일’로 불리는 주 4일제를 지난 2022년부터 시행 중이다. 연차 소진이나 임금 삭감도 없는 온전한 주 4일제다.

김영아 휴넷 수석은 “고객 접점 부서 같은 당직이 불가피한 부서는 금요일 쉴 수 없으니 다른 요일에 교대로 쉴 수 있도록 해 전 임직원 모두 주 4일 근무를 맞추고 있다”고 했다.

휴넷은 근로 시간 단축이 생산성 저하가 아닌 향상의 도구라는 ‘역발상’을 증명해 냈다. 지난 2019년부터 시행한 주 4.5일제를 시작으로, 주 4일제까지 확대했다. 5일 동안 하던 업무를 4일 내로 끝내니, 자연스레 업무 효율도 올라갔다는 설명이다.

수치로도 드러난다. 주 4일제 근무 시행 1년을 맞은 지난해 7월 기준 매출은 전년보다 20% 늘었다. 직원 10명 중 9명 이상이 주 4일제에 만족했고, 퇴사율은 전년보다 3.7%포인트(P) 떨어졌다. ‘워라밸’이 입소문을 타며 채용 경쟁률도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그러자 산업계 전반으로 근로 시간 단축이 확산할 조짐이다. 지난 2004년 주 5일제 시행 이후 20년 만이다. 그동안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주 4일제는 제조업과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병원까지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일 많이 하는 나라’ 韓…OECD 국가 중 다섯 번째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일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 시간은 1901시간이다. 38개 회원국 가운데 5번째로 길다.

역대 정부는 여러 차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일하는 시간을 줄여왔다. 현행 근로 시간 제도는 법정근로시간 1주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까지 총 주 52시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공포된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른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2003년 법정근로시간을 기존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줄인 것을 토대로 하되, 1주의 범위를 주말까지 더했다. 이에 따라 최대 주 68시간이었던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줄었다.

일하는 일수 자체도 감축했다. 현행 주 5일제는 1998년부터 추진돼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국내서 시행됐다. 한국은 주 5일제 시행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근로 시간이 긴 국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격차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선진국이 주 4일제와 같은 새로운 근무 체제 도입에 선제적으로 나서면서 수십년 동안 좁혔던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가 근무일을 주 6일에서 5일로 단축한 게 1926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 5일제 도입도 무려 80년 가까운 격차를 나타냈다.

그래픽=손민균

이미 세계 각국은 주 4일제 효과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 상태다. 세계인구리뷰(World Population Review)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은 물론, 독일, 벨기에,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지역과 아시아에서는 일본까지 약 20개국이 주 4일제를 도입했거나, 시험 중이다.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 글로벌(4 Day Week Global)은 지난해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세계 최대 규모로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실험의 골자는 근무시간을 80%로 줄여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며 임금과 생산성은 100%를 유지하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가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파격적이고 혁신적이었다. 포데이위크 글로벌은 미국 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2023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IT부터 병원, 제조업까지…한국도 주 4일제 ‘시험 중’

“자기 계발, 여행, 가정관리 등에 쉬는 날을 활용해 일과 일상생활 균형을 확보하면서 근무 일에는 일에만 몰입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향상되는 기분”. (SK그룹 계열사 관계자)

“초등생 아이 하원 시간과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휴직하려고 했었다. (주 4일제로)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학부모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 저도 좋고, 아이도 좋아한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개학을 맞은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후 하교하고 있다. /뉴스1

한국 역시 일부로 한정적이지만, 주 4일제를 시험 중이다. ‘단맛’을 본 근로자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주일 근무 일수가 단 하루 줄었지만, 실제 체감하는 효과는 하루 이상이라는 평가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미뤄뒀던 여행을 떠나거나, 자기 계발에 집중하기도 한다.

국내 기업 가운데 온전한 주 4일제를 시행 중인 곳은 휴넷이 거의 유일하다. 휴넷은 지난 2022년 7월부터 매주 금요일을 휴무일로 정하고 주 4일제를 시행 중이다. 근로 시간을 줄였지만, 연차와 급여는 그대로 유지했다.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도 줄어드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휴넷은 주 4일제 시행 1년을 맞은 지난해 7월 기준 매출이 전년보다 20%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성장보다 ‘질’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시행 중인 주 4일제는 격주나 월 단위다. SK그룹과 CJ그룹 계열사들이 대표적이다. 다만 2주에 한 번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해 운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 4일제보다는 주 4.5일제에 가깝다.

SK그룹은 2018년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시작으로,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으로 주 4.5일제를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해피프라이데이’라는 제도를 통해 회사 직원은 한 달에 두 번 금요일에 쉴 수 있다.

CJ그룹의 콘텐츠 계열사인 CJ ENM도 지난해 2월부터 주 4.5일제를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월급날을 포함한 주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다. 이 외에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금융 앱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 숙박 플랫폼인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여기어때컴퍼니 등도 다양한 방식으로 단축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주 4일제 근무를 시범 운영한 강남세브란스 83병동 구성원들.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소식지 발췌

국내 ‘빅5′ 병원 중 한 곳인 세브란스병원도 주 4일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3개 병동에서 실험적으로 추진했고, 올해는 2곳을 더 확대 적용한다. 근로 시간이 줄면서 임금도 줄었지만, 주 4일제를 경험한 간호사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주 4일제는 IT와 서비스업을 넘어 제조업으로도 확산 조짐이다. 포스코가 지난해 임금과 단체협상에서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결정한 데 이어 국내 최대 단일노조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지난해 새 지부장 선거에서 주4일 근무제 공약을 내세운 후보자를 선출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 4일제 도입은)임금을 얼마나 보존할 수 있을지가 쟁점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높일 수 있는 근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후 사업장 규모가 큰 곳부터 작은 곳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해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