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의 한 고시원 벽지를 뜯어내자 빈대와 함께 빈대 배설물로 오염된 벽지 안쪽 모습이 드러나는 모습. /원스톱방역 제공

서울의 한 고시원 벽지를 뜯어내자 새끼손톱 만한 벌레 여러 마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벽지 안쪽은 이미 벌레가 남긴 배설물로 까맣게 오염된 후였다. 벌레의 정체는 최근 서울을 비롯해 경기, 인천, 충청 등 전국으로 퍼질 기미를 보이는 빈대였다. 빈대를 확인하자 하얀 전신 방역복을 입은 남성이 작은 집게로 벌레들을 잡아냈다. 투명한 실험용 접시(샬레)에 빈대를 옮겨낸 남성은 미리 준비해온 해충약들을 꺼냈다.

이후 남성은 살아있는 빈대들을 한 마리씩 마룻바닥에 내려놓은 뒤 “약품 테스트 진행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빈대마다 각기 다른 해충약을 조금씩 뿌렸다. 일종의 ‘성능 테스트’를 현장에서 진행한 것이다.

정의석 원스톱방역 대표는 “빈대 종류나 상태에 따라 잘 듣는 해충약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약이 가장 효과가 있나 먼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방역팀이 고른 건 빈대를 30초 만에 죽인 A 제품이었다.

해충약 선택을 끝낸 방역팀은 청소기를 먼저 꺼내들었다. 살아있는 빈대나 시체, 분비물과 같은 것들을 먼저 깔끔하게 제거한 뒤 적재적소에 약물 처리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게 방역팀 설명이었다.

지난달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나온 빈대를 향해 방역팀이 해충약을 뿌려 약효를 테스트하는 모습. /원스톱방역 제공

유럽을 비롯한 해외 관광지에서나 보이던 빈대가 국내로 들어와 빠르게 퍼지면서 사설 방역업체들에 ‘빈대 퇴치’ 의뢰가 폭주하고 있다. 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인천은 물론 그 밖에 있는 지방에서도 빈대를 잡아달라는 신고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정 대표는 “원래 빈대 퇴치 출장은 한 달에 한두건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하루에만 두세번씩 나가고 있다”며 “초반에는 서울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서울 밖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빈대 퇴치) 의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오전에 경기도 평택, 오후에 충남 당진으로 빈대 퇴치 출장을 나갔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사설 방역업체 관계자는 “경기도는 광주와 그 인근 지역을 빼면 사실상 남쪽 북쪽 가리지 않고 의뢰가 쏟아지는 상황”이라며 “서울도 25개 자치구 중 최소 절반 이상은 이미 출장 이력이 있고 앞으로 점점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빈대 한 마리가 침대 위를 기어가고 있다. /유튜브 캡쳐

해외에서 이른바 ‘베드 버그(침대 벌레)’라 불리는 빈대는 침구류나 의자에 서식하며 사람 피를 빨아먹고 산다. 빈대 성충은 피를 빨지 않아도 길게는 6개월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 강한 생존력 때문에 번식도 잘 돼서 한 번 퍼지면 좀처럼 박멸이 어렵다. 때문에 바퀴벌레, 곱등이와 같이 악명높은 해충들보다 퇴치가 까다롭다는 말도 나온다.

빈대에게 물리면 해당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며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이는 모기와 비슷한 증상이지만 전문가들은 모기보다 빈대가 훨씬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발견 직후 초기에 박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모기는 한두마리 날아다니는 걸 잡으면 그만이지만 빈대는 베개 커버, 침대 시트, 이불과 같은 곳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 찾기도, 잡기도 어렵다”며 “빈대가 퍼진 침대에서 하룻밤만 잠을 자도 30~50번씩 온 몸을 물어 뜯기기 때문에 그로 인한 정신건강 피해가 불면증, 만성피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설 방역업체들은 해외에서 국내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통해 빈대가 들어온다고 파악 중이다. 정 대표는 “외노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가장 많이 지내는 곳이 고시원, 찜질방이다”리며 “이곳을 기점으로 머릿수를 늘려가던 빈대가 같은 고시원에 살거나 찜질방을 다녀간 사람들을 매개체 삼아 지하철, 영화관, 호텔 등까지 퍼지는 패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