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80시간에서 100시간은 일해야 한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2018년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일 중독자로 유명한 머스크는 자신만 그렇게 일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장시간 근로를 시킨다. 트위터를 인수한 뒤에는 직원들에게 ‘24시간 연중무휴 근무’를 요구했다.

이런 모습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주일에 12시간까지밖에 연장근로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면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유연화하겠다고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이 방안에 따르더라도 주 최대 69시간까지밖에 일하지 못한다. 이는 미국은 연장근로 한도를 정해놓은 규정이 없고, 고액 연봉을 받는 사무직 근로자에게는 연장근로 수당 적용도 면제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사무실 바닥에서 쪽잠을 자는 트위터 직원 에스터 크로퍼드. /트위터 캡처

◇머스크 “나 뿐 아니라 테슬라 모든 직원 주 100시간 일했다”

머스크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직원들에게 장시간 근로를 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11월 IT 전문매체 ‘리코드’ 인터뷰에서 머스크는 “CEO인 나 뿐만 아니라 테슬라 모든 직원은 ‘모델3′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주당 평균 100시간씩 일했다”며 “생산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또 모델3 생산이 목표에 도달했다면서 “작업시간이 좀 더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었다. 주당 80~90시간 정도로 내려갔는데, 정말 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리코드는 “주당 100시간 일한다는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4시간씩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지난해 트위터를 인수한 뒤에는 더 극단적인 장면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머스크는 트위터 전 임직원이 공유하는 온라인 캘린더에서 매월 1일이었던 회사 전체 휴일을 삭제했다. 트위터 관계자는 “머스크는 말 그대로 24시간 연중무휴 근무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트위터 한 직원은 본사 제품 관리책임자가 사무실 테이블과 의자 사이에서 침낭에 들어가 자고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화상으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접견한 뒤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미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한국과 같은 주 40시간이다. 그러나 머스크가 직원들에게 주 100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은 연장근로 한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FLSA)에 따라 근로자가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한다면, 사업주는 초과근로수당 50%를 포함해 시급의 1.5배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고액 연봉을 받는 근로자는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도 없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 제도에 따라 육체적 업무를 하지 않는 사무직으로 관리 관련 직무에 종사하면서, 연봉이 10만7432달러(약 1억4000만원) 이상인 근로자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규칙적인 임금으로 1주 당 684달러(약 90만원) 이상을 받는 관리직과 전문직 근로자도 포함된다.

◇대선 공약에 ‘스타트업·전문직·고액연봉자 근로시간 규제 적용 예외’ 있었지만

정부가 지난달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는 이 같은 내용은 없다.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면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개편안 골자다. 이 제도에서 근로자에게 ‘11시간 연속 휴식’을 부여할 경우 주 최대 69시간, 그렇지 않을 경우 주 최대 64시간 근로하게 된다. 또 일을 많이 한 주가 있으면, 그 뒤에는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미국의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과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등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에 포함된 내용 외에도, ‘연장근로시간 특례업종 또는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신규 설립된 스타트업 포함’ ‘전문직 직무, 고액연봉 근로자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 등 근로시간 규제 적용 예외’ 문구가 대선 공약집에 적혀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작성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 지원방안 마련’이 담겨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대선 당시 근로시간 관련 공약. /국민의힘 제공

다만 한국은 장시간 근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미국과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게임회사 넷마블의 자회사에서 일하던 20대 직원 A씨는 2016년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연사했는데, AT씨는 발병 4주전에는 주 78시간, 7주 전에는 주 89시간 일했다. 넷마블은 ‘구로의 등대’라고 불리기도 했고, 사회적 문제가 되자 야근과 주말근무를 원칙적으로 금지시켰다.

정부는 IT 업계의 장시간 근로 관행 근절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소프트웨어(SW) 개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1분기(1~3월) 포괄임금 오남용 기획감독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