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3일 “‘더 일하고’ ‘덜 받는’ 포괄임금 오·남용은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로 위법 사항”이라며 “정부는 올해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의 원년으로 삼고, 전례 없는 강력한 조치를 통해 불법·부당한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울산지역 조선업 원하청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이 장관은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IT 기업 노조·근로자 간담회에서 “(포괄임금 오·남용은) 일한 만큼 보상받지 않아 ‘공정’의 가치에도 맞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간담회에서는 네이버·넥슨·웹젠 노조 지회장과 소프트웨어(SW) 업계 청년 근로자가 참석했다.

이 장관은 포괄임금 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공장법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70년간 유지된 획일적·경직적 규제로 현실 요청에 부합하는 관행이 생겨났는데 이게 바로 소위 포괄임금”이라고 했다.

이어 “포괄임금은 근로기준법상 제도가 아닌 판례가 현장수요를 감안해 인정해온 관행”이라며 “일부 현장에서는 소위 포괄임금이라는 이유로 실근로시간을 산정해 관리하지 않고 오·남용하면서 ‘무한정 공짜야근’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 장관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한 청년, 저임금 근로자 등 약자를 보호하는 관점에서도 포괄임금 오·남용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며 “특히 ‘판교의 등대’라고 불릴 만큼 IT, 사무직 청년들의 어려움이 크다고 들었다”고 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2021년 1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SW 산업 근로자의 임금산정 방식은 63.5%가 포괄임금제다.

이 장관은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은 현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근로시간 단축 기제”라며 “포괄임금을 오·남용하면 기업이 근로시간을 비용으로 인식하지 못해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포괄임금 오·남용에 행정력을 총동원해 공짜 야근, 장시간 근로를 야기하는 현장의 불법·부당한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넥슨 노조 지회장은 “넥슨은 포괄임금제 폐지 후 평균 근로시간이 감소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하는 사람들은 수당이 올라가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한 청년 근로자는 “주변을 봐도 포괄임금을 많이 시행해 자신의 야근·연장수당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며 “지금 회사는 연장·야간·휴일 근무를 모두 수당으로 사정해,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어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익명으로 접수된 포괄임금 오·남용 사례. /고용부 제공

포괄임금제라고 불리는 ‘포괄임금 계약’과 ‘고정OT(Over Time) 계약’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제도가 아니라 판례에 의해 형성된 임금지급 계약 방식이다. 각각 산정해야 할 여러 임금 항목을 포괄해 일정액으로 지급한다. 근로 형태나 업무 성질상 추가 근무수당을 정확히 집계하기 어려운 경우, 노사 당사자 간 약정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한 뒤 매달 일정액의 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한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와 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 지급계약을 체결했더라도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 근로시간을 산정할 수 있으면 근로기준법상 수당 기준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짜 야근’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돼 왔다.

고용부는 올해 1월부터 포괄임금 오·남용을 근절하기 위한 기획 감독을 시행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고용부 홈페이지 내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포괄임금 오·남용 신고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편법적 임금지급 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익명으로 접수한 포괄임금 오·남용 일부 사례도 공개했다. A씨는 “연장근로시간을 한 달 33시간으로 정해놓고 연장근로수당 1.5배를 주지도 않다. 출퇴근 기록카드를 요청했으나, 사측의 거부로 출퇴근 기록도 안 되고 있다. 일한 만큼 돈 좀 받게 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