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6시 30분쯤. 여의도한강공원 곳곳은 밤새 버려진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잔디 밭에는 각종 전단지, 치킨 포장 박스, 라면 용기, 그리고 맥주캔과 술병이 질서 없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음식물이 흘러내린 바닥 부근에는 냄새를 맡고 몰려온 개미 떼가 들끓었다. 쓰레기 뭉치마다 비둘기와 갈매기 무리가 몰려 머리를 숙인 채 남은 음식물을 쪼아대고 있었다.

공원 내부 잔디밭에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라고 쓰인 현수막과 팻말들이 보였지만, 전날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쓰레기를 방치해둔 채 떠났다. 매일 아침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산책한다는 시민 박정순(77)씨는 “이 좋은 공원이 아침마다 더럽혀진 모습을 보면 매번 화가 난다”며 혀를 찼다.

5일 오전 6시 30분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여의도한강공원 곳곳에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정재훤 기자

이날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환경의 날은 1972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국제사회가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공동 노력을 다짐하며 제정,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여의도와 뚝섬, 서울숲 등 서울 시내 유명 공원을 찾아 직접 플로깅(Plogging)을 해 봤다. 플로깅이란 스웨덴어 ‘이삭을 줍다(Plocka Upp)’와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건강과 환경을 함께 지키기 위해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가리킨다.

오전 7시쯤,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약 1시간가량 이동했다. 공원 내 푸드트럭에서 파는 음식, 배달로 오는 치킨 등을 포장했던 용기나 박스가 주로 눈에 띄었다. 내용물이 반쯤 남은 테이크아웃 커피잔, 각종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병도 종종 보였다. 그렇게 쓰레기를 주우며 이동한 결과, 약 10리터 크기의 비닐봉지 3개를 가득 채우는 데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원에 여전히 많은 쓰레기가 남아있어 중간에 봉지를 몇 번이고 비워내야만 했다. 플로깅 도중 바람에 실려 돌아다니는 비닐봉지를 쫓아가 줍던 시민 이모(72)씨를 만났다. 이씨는 “이런 봉지들이 날아다니다가 결국 강물에 빠져버린다”며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따로 있는데도 그냥 바닥에 버리더라. 이게 어떻게 선진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저었다.

5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에서 플로깅하며 모은 쓰레기들. 20여분 만에 약 10L 크기의 봉지 세 개가 가득 찼다./정재훤 기자

지난 4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날씨 또한 빠르게 따뜻해지며 한강을 이용하는 시민의 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가 제공하는 ‘한강공원 이용객 현황’ 통계에 따르면, 11개 한강공원의 일반 이용자 수는 올해 3월 139만6889명에서 4월 251만1973명으로 한 달 사이에만 80% 가까이 늘었다. 여의도한강공원의 일반 이용자 수는 3월 5만9337명에서 4월 92만3365명으로 14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이날 오전 9시 뚝섬유원지역 1번 출구에서는 시민 8명이 산책을 나온 듯한 간편한 옷차림으로 목장갑과 봉지를 챙긴 채 뚝섬한강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와이퍼스’ 앱에 올라온 ‘세계 환경의 날 맞이 플로깅(줍깅)’ 모집 글을 보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와이퍼스’는 유리를 닦는 와이퍼처럼 지구를 닦겠다는 의미를 담은 전국구 플로깅 단체다.

뚝섬한강공원 역시 전날 놀러 온 시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가득했다. 주차장은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널브러져 있었고, 배달 구역에는 전단지와 영수증, 배달 음식 포장 용기나 맥주병 등이 나뒹굴었다. 뚝섬한강공원 담당 환경미화원 오모(52)씨는 “오늘이 세계 환경의 날인 줄도 몰랐다”며 “특정 날을 기념하면 뭐 하나. 여기는 늘 쓰레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5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뚝섬한강공원. 쓰레기가 널브러진 가운데, 플로깅에 나선 시민들이 쓰레기를 열심히 줍고 있다/민영빈 기자

단 30분 만에 10L짜리 봉지에 쓰레기가 가득 찼다. 이날 1시간 30분 동안 이들이 뚝섬한강공원을 돌면서 플로깅(줍깅)한 쓰레기는 10L짜리 봉지 16개가 나올 정도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봉지들을 한 번에 들고 이동할 수 없어, 공원 곳곳에 비치된 ‘쓰레기 담는 리어카’를 자주 찾아야 했다.

이날 플로깅을 함께한 시민 8명은 더운 날씨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산책로나 잔디밭에 보이는 쓰레기들을 줍는 데 집중했다. 플로깅 모집 글을 올린 손수진(26)씨는 “‘세계 환경의 날’에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면 환경보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혼자 할 때보다 다 같이 모여서 할 때 계속하게 되는 시너지 효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날 오전 9시쯤, 서울숲 입구에는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봉지와 장갑을 나눠 갖고 있었다. 이들은 일요일 아침마다 서울숲 곳곳을 거닐며 플로깅을 하는 ‘ssg(서울숲쓰레기줍기) 모닝클럽’ 멤버들이었다. 모임 주최자인 박진우(38)씨는 “성수동 주민들과 환경을 위한 모임을 하면 어떨까 싶어 기획했다”며 “SNS를 통해 매주 선착순으로 참가 신청을 받다보니 멤버들이 주마다 바뀐다”고 했다. 이날 플로깅에 참여한 멤버들의 참여 동기와 횟수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5일 오전 9시쯤,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 공원에서 한 플로깅 동호회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이다./김민소 기자

이날 플로깅을 처음 해본 김은지(27)씨는 “환경의날을 기점으로 앞으로 환경을 위해 무엇이든지 실천하고자 오늘 플로깅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플로깅을 하는 분들의 마음가짐이 평소에도 궁금했는데 오늘 멤버 분들을 실제로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근처 상점들도 이들의 플로깅 활동을 응원했다. 친환경 봉지를 만드는 한 업체에서는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생분해 봉지를, 한 향수 브랜드에서는 집게를, 서울숲 근처 김밥 가게에서는 도시락을 지원하며 이들을 도왔다. 공원을 찾은 시민들도 이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