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동대문 도매상가 ‘청평화패션몰’에서 여성 의류 도매업을 해왔던 유희선(35)씨는 최근 주말에 1박 2일로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유씨는 “5년 전 결혼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도 주말여행을 가지 못했는데 지난달 처음으로 강릉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며 “바다를 보면서 좋아하니 아이들을 보니 앞으로 주말을 이용해 자주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평화패션몰 앞 위치한 도매상가 ‘APM PLACE’에서 3년간 일한 박모(32)씨는 최근 ‘빵지순례’를 하는 취미가 생겼다고 한다. 토요일에는 밀린 잠을 자고 일요일에는 전국의 유명 빵집을 찾아다니는 새로운 취미를 즐기고 있다.

30일 오전 청평화패션몰 상가에 주5일제 영업 시간을 안내하는 간판이 붙여있다. /김수정 기자

밤낮 없이, 주말도 없이 일하는 상인들이 많은 동대문 의류 도매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유씨나 박씨처럼 주말을 즐기는 상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모두 지난 3월부터 도입된 ‘주 5일제’가 몰고온 변화다.

30일 동대문 의류업계에 따르면 동대문 도매시장에 위치한 청평화패션몰·디오트·테크노·DWP 등 상가가 올해 3월 1일부터 주 5일제를 실시했다. 뒤이어 4월 중으로 남평화패션몰·혜양엘리시움·신평화패션타운·뉴죤 등 대부분 상가들이 주 5일제를 시행했다. 동대문 도매시장의 상가들은 대부분 ‘월요일~토요일’이나 ‘일요일~금요일’ 등 주 6일제로 운영해 왔는데 이제는 ‘주 5일제’가 새로운 표준이 된 것이다.

동대문 도매시장이 처음부터 변화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동대문 도매시장 상가들은 지난 2015년부터 주5일제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상인들 사이에서 찬반 의견이 갈리면서 매번 무산됐다. 그러다 올해는 사전 설문조사에서 상인의 90% 이상이 주 5일제 도입에 찬성하면서 전격적으로 제도가 시행됐다.

도매 상가들이 주 5일제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20·30세대,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합성어)’ 사장이 동대문 패션 시장에 유입됐기 때문이다. 통계청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0대와 30대 청년층이 대표인 업체 수는 각각 18만2000개, 39만1000개로 전년 대비 163.6%, 10.3%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2.7%)이 숙박·음식점업과 제조업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패션 쇼핑몰 창업 문턱이 낮아지면서 동대문에도 MZ세대 사장이 증가한 것이다.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는 20·30대 청년층이 사장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동대문 도매 시장도 변화의 바람을 피하기 힘들었다. 주 5일제로 사장들이 워라밸을 챙기는가 하면 홍보 방식도 바뀌고 있다. 도매업자가 일방적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SNS를 활발히 사용해서 직접 매장 홍보에 나서고 있다. 동대문 도매 상가에서 11년간 일한 박혜숙(40)씨는 “예전에는 매장이 있으면 손님들이 와서 물건만 떼어가는 시스템이었다면, 이제는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스토리, 위챗 등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직접 홍보에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시대적 변화도 있지만 젊은 세대가 SNS 사용을 잘하다 보니 홍보 문화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디오트 상가 문에 안내된 주5일제 영업일(왼)과 디오트 상가 내부(오). /김수정 기자

주 5일제에 대한 상인들의 반응도 긍정적인 편이다. 동대문에서 15년 동안 도매업을 해온 최모(37)씨는 2015년 당시 주 5일제 도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최씨는 “당시에는 하루라도 일을 덜 하면 거래처 사람들도 번거롭고 돈도 하루 치 덜 벌 거 같아서 반대했다”며 “하지만 막상 주 5일제가 도입되니 대부분 거래처가 주 5일제 시행을 이해해주며 다른 날 구매하러 오셔서 매출 변화가 크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들이랑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반대했던 게 민망하다”고 말했다.

주 5일제 도입으로 도매상들의 고민이었던 인력난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 주 6일제를 시행했을 때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도매 상가 ‘뉴존’ 관계자는 “주 5일로 바뀌다 보니 채용 지원자가 두 배 정도 많아졌다”며 “이직률도 주 5일제 도입 이후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박중현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회장은 “주 5일제를 이끈 것은 동대문 도매 시장에 젊은 사장이 많아져 워라밸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라며 “주로 젊은 사장님들이 많고 캐주얼 의류를 판매하는 상가 위주로 먼저 주 5일제를 도입했고 이후 나머지 상가들이 잇따라 주 5일제를 도입했다”고 했다. 이어 박 회장은 “주 5일제가 도입됐지만, 매출 역시 크게 줄지 않고 그대로 유지 중이라 상인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