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을 이용해 성착취물과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지 약 2년이 지났지만,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중심으로 성매매를 요구하거나 신체 사진·영상을 찍어 보내라는 등 성착취 목적의 유인 행위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랜덤채팅 앱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 대상에서 배제돼 있기 때문에 경찰도 속수무책이다. 랜덤채팅이란 앱에 접속하면 무작위로 채팅 상대가 정해지고, 이용자들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른 채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성별을 여성으로 설정한 뒤 한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자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로부터 성매매를 권유받았다./랜덤채팅 앱 캡쳐.

지난달 27일 기자는 직접 랜덤채팅 앱을 사용해봤다. 이 앱을 이용하려면 휴대전화 인증을 해야 한다. 30대 남성인 기자가 성별을 여성으로, 나이를 20살로 설정했지만 인증에 성공했다. 회원가입 이후 프로필에 기재되는 나이·성별을 수정할 수 있었다. 언제든지 상대방을 속이고 유인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다. 실제 서울 관악구에서는 한 남성이 랜덤채팅 앱에서 여성인 척 행동해 다른 남성을 유인하고, 수면제를 먹여 나체 사진을 찍은 뒤 이를 빌미로 협박한 사건이 있었다.

앱에 접속하자 5분도 지나지 않아 남성으로 추정되는 6명의 이용자에게 쪽지가 왔다. 이들은 키·몸무게를 궁금해 하며 만남을 위한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사실상 성매매를 권유했다. 이를 거부하자 ‘건오(건전한 오프라인)’를 제안했다. 돈을 지불할테니 사전에 합의된 신체접촉만 하면서 데이트를 하자는 것이었다. 입맞춤 등 신체접촉 수위가 높아질수록 가격도 뛰었다.

또 다른 앱에서는 노골적인 성착취 목적의 대화가 난무했다. 한 이용자는 다짜고짜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며 만남을 요구했다. 그는 “나에게 복종하라”며 “내가 시키는 자세를 취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다른 이용자도 얼굴과 특정 신체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라고 했다.

앱을 통한 성매매 요구 사례나 성착취 목적의 유인 행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방심위에 접수된 랜덤채팅 관련 민원은 1만5635건이다. 연도별로는 ▲2017년 422건 ▲2018년 2461건 ▲2019년 2807건 ▲2020년 4126건 ▲2021년 5819건이다.

그러나 앱 내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성매매와 성착취 목적의 대화는 방심위의 관리를 받지 않고 있다. 방심위 심의 대상은 ‘일반에게 공개돼 유통되는 정보’다. 일대일 대화에서 성매매나 성적 유인으로 볼 만한 대화가 있더라도 이는 일반에게 공개된 정보가 아니라서 방심위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방심위는 앱 사용자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성매매 게시글 등을 올린 행위에 대해서만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경찰도 속수무책이다. 경찰도 랜덤채팅 앱에서 이뤄지는 일대일 대화를 들여다볼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성매매의 경우 관련 대화를 확인한다고 해도 현장을 덮치거나 또 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않으면 처벌하기가 어렵다. 성착취 목적의 대화는 위장수사를 통해 적발할 수 있지만, 그 대상은 아동·청소년에 국한돼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영상 유포 등은 범죄가 발생하고 나서야 수사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일대일 대화방에서 이뤄지는 성매매 등을 적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특정 범죄 혐의를 발견하면 경찰에 수사의뢰를 할 수 있다”면서도 “오래 전에 있었던 내용을 가지고 수사의뢰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인 간 성매매의 경우 현장에서 단속하지 않는 이상 랜덤채팅 대화만으로 처벌하기가 어렵다”면서 “경찰이 랜덤채팅 내 대화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