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붕괴 원인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경찰은 39층 붕괴와 관련해 역보(’ㅗ’자형 받침대) 무단 설치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공학적으로 잘못된 발표라는 의견이 전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광주 붕괴 사고 자문위원회에 건축구조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는 이성민 한국건설품질연구원 박사는 27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역보가 수십톤에 달해 붕괴 원인이 됐다는 발표는 공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붕괴 관련 전문가가 국내에 많지 않은 만큼, 경찰 수사 자문 여부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발생 17일째인 27일 오후 크레인에 매달린 바스켓에 탄 작업자들이 외벽 안정화를 위해 와이어 보강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비즈가 입수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원인 관련 경찰 발표에 대한 이성민 박사의 의견서에 따르면 경찰이 발표한 ‘헛보(목재 선반을 동바리로 받치는 가설보)’는 더 이상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표현이 아니고, ‘역보’는 붕괴 사고 현장에 적용하기 힘든 부적절한 표현인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 서구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수사본부(광주경찰청)는 25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역보가 계획과 다르게 설치됐고 동바리가 무단 철거됐다”며 “붕괴 사고의 치명적 원인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역보 중량이 40~50톤(t)에 달하는 탓에 그 아래층이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일반적인 보는 중력 하중에 대해 저항하도록 설계되고, 역보는 수압이나 지압이 중력보다 우세한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바다에 떠 있는 배 밑창에 사용하는 것이 역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이 역보라고 표현한 것은 데크플레이트(콘크리트 타설 시 사용하는 일체형 강판 거푸집) 양쪽을 지지하기 위해 콘크리트 지지대를 외부에서 들여와 설치했다는 의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역보의 무게가 수십톤에 달해 붕괴에 치명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경찰의 분석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붕괴 현장을 추정해볼 때 경찰이 주장하는 역보의 무게는 1미터(m)당 1톤이 안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수는 하부 층의 기둥이나 벽체에 지지되고 있어 붕괴로 이어질 정도는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이 박사는 “이 정도의 하중이 붕괴를 야기한다는 추론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붕괴 형태서 ‘펀칭 현상’(붕괴 시 기둥이 바닥판을 뚫고 나오는 현상)이 보였다는 경찰 발표도 잘못된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하부층으로 갈수록 붕괴면적이 좁아진 것이 펀칭 현상으로 보인다는 것은 공학적으로 어긋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38층 거푸집을 조기에 철거할 경우 PIT층 바닥 콘크리트 강도가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부 기둥 주변에 발생해야 하는데, 전반적인 현황을 볼 때 펀칭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붕괴 원인에 대한 잘못된 발표와 그로 인한 보도가 화정아이파크 붕괴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녹슨 철근과 콘크리트 품질에 대한 지적은 붕괴에 영향이 ‘제로’라고 보면 된다”며 “붕괴 관련 전문가가 국내에 많지 않은데, 경찰은 어떻게 자문을 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붕괴 원인을 파악하고 공사 관계자들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정작 전문가 자문을 구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발표한 붕괴 원인에 대해 “따로 전문가 자문을 구한 것은 아니고, 수사를 통해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후 사고조사위원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붕괴 원인 조사 결과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날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감리업체 직원 2명을 소환 조사했다. 전날에는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관계자 2명을 불러들여 조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