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에게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며 현관문을 용접하거나 집 안에 무단침입해 가전기기를 떼어간 시행사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시행사는 잔금만 지불하면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가 가능하도록 한 법원의 판단도 무시한 채 입주를 방해하고 있다.
12일 조선비즈 취재 결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해 5월 서울서부지법에 추가 공사비와 건물 인도 이행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같은 해 11월 시행사에게 입주민의 잔금 지급과 건물 인도를 동시에 이행하라고 판결했지만, 시행사는 여전히 추가 공사비를 지불하지 않은 세대의 입주를 막고 있다.
실제로 방문한 아파트 내부에선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음'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용접돼 있는 현관문과 출입을 방해하는 시설물이 발견됐다. 이외에도 용역업체가 현관문 잠금장치를 훼손하거나 임의로 잠금을 해제해 집 안에 전자기기를 가져가는 등 무력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입주민 A(34)씨는 "법원에서 건물 인도와 관련해 확정 판결과 집행문이 나왔는데도 막무가내로 입주가 거부되고 있다"며 "혹시 몰라 현관문 앞에 CCTV도 설치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가 공사비를 안 냈다는 이유로 건설사에서 입주민의 권리인 하자 보수 요구도 받고 있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법조계에선 이 사건을 두고 시행사와 건설사의 행위에 불법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분양계약에 입주 시점까지 기재돼 있어 시행사는 입주를 도울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시행사가 잔금을 치르고 입주를 마친 일반 분양자의 입주를 막거나 주거를 침입하는 것은 불법 침탈에 해당될 수 있다고 했다.
엄정숙 종합법률사무소 법도 변호사는 "입주민이 시행사 측에서 점유를 넘겨받고 주거를 침탈해 들어온다면 불법 침탈의 가능성이 있다"며 "분양계약서에 입주 시기가 기재돼 있으면 시행사는 잔금과 동시에 입주를 도울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시행사는 분양자들에게 '통합시스템 구축'을 명목으로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다. 시행사는 사업설명회를 열고 주민의 90% 동의를 얻어 사업을 진행했다며 추가 공사비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공사비가 이미 발생해서 시공사에 못 낸 비용만 200억원이다. 시공사는 이미 유치권까지 설정했다"며 "입주민 한 명은 1760만원을 내면 되지만, 시행사는 손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하지만 건설업계나 재건축업계에선 분양을 받고 나서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기 위해선 입주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분양을 하고 나서 다수결로 계약 내용을 바꾸는 건 문제가 있다"며 "입주민이 원하지도 않는 시스템을 다수결로 동의받았다고 공사비를 내라고 강요하는 건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엄 변호사도 "시공사와 시행사가 동의 없이 설치한 시설에 대해서 입주민이 비용을 지불할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의 없이 설치된 시스템은 떼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될 뿐"이라며 "이로 인해 입주가 지연되거나 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면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고 했다.
폭행이나 협박 등 무력을 행사해 입주민의 주거 안정을 해쳐 주거침입죄와 재물손괴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주거침입죄는 소유권 여부와 상관없이 성립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진규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변호사는 "소유권 등기와 관계없이 주거의 안정을 저해하게 될 경우 주거 침입이 성립될 수 있다"며 "현관문을 용접하거나 잠금장치를 훼손하고 가전기기 등을 떼가는 것은 재물손괴와 절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잔금과 동시에 건물 인도를 이행하라고 했기 때문에 시행사나 시공사의 유치권도 인정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예림 재개발·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현재 시행사는 입주민의 주거지를 무단 점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입주가 지연된다면 그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통합시스템 설치에 반대하는 주민의 집에 들어가 월패드를 빼가는 것도 재물손괴나 절도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시행사와 시공사를 대상으로 형사 고소에 나서고 있다. 이 아파트 분양입주대표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입주민 5명은 시행사를 상대로 권리행사방해죄 혐의로 개별 소송을 제기했다. 또 입주민들은 오는 13일 권리행사방해죄 혐의로 단체 고소를 접수할 예정이다.
분양입주대표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철(46)씨는 "용역업체가 아파트 근처에서 대기하다 이사 오는 입주민들을 방해하고 전기 차단기를 훼손하는 등 불법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경찰도 시행사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형사 입건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 신고가 시작된 건 지난해 8월부터다. 그동안 50건이 넘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신고가 계속됐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건 아파트의 소유권과 입주권을 놓고 권리 관계가 복잡해 '민사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해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두어달 동안 해당 아파트를 둘러싸고 명백한 불법 행위가 자행되는 데도 경찰은 손만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이 되자 경찰은 뒤늦게 전기를 차단하는 등 명백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 입건하겠다는 지침을 세우고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