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라고 주장한 김모씨가 본인이 유포한 의혹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자백을 했습니다.

이는 배구선수였던 박상하(35)씨 측 법률대리인인 법률사무소 대환이 최근 언론에 밝힌 내용이다. 지난 2월 인터넷 커뮤니티 한 익명게시판에 박씨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글이 올라오자, 이에 대한 검증도 없이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후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허위임이 밝혀졌지만, 박씨는 이미 소속팀에서 은퇴한 뒤였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조선일보DB

인터넷 상에서 익명성에 기대어 활개를 치고 있는 악성댓글이나 비방글, 거짓 폭로글 등을 줄이기 위해 실명 대신 본인 확인을 거친 아이디와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공개하도록 하는 ‘인터넷 준실명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외에 서버를 둔 외국 플랫폼 업체들에게까지 적용하기는 어려워 ‘반쪽짜리 법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터넷 준 실명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폐지된 ‘인터넷 실명제’와 달리 이번 법안은 실명 대신 본인 인증을 거친 아이디를 공개하도록 했다.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명 이상이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게시물이나 댓글을 올리는 이용자의 아이디를 공개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을 담은 글을 유포할 경우 수사기관이 아이디 조회를 통해 즉각적으로 가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형사고소가 있으면 본인 확인이 쉽기 때문에 악성댓글이나 비방글 등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안팎에서도 이 제도가 도입되면 용의자 특정이 수월해져 신속한 수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해외에 서버를 둔 외국기업에는 이를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2007년에도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됐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소셜미디어(SNS) 업체들은 적용을 하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들 업체들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실명 인증이 없이 이메일 주소만 넣으면 바로 가입 및 이용이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증을 받는 이메일 역시 실명 인증이 필요없는 해외업체에서 만들면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

최근 땅투기 의혹이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한 직원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아니꼬우면 이직하라’고 올린 조롱글이 사회적 문제가 돼 경찰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에 나섰지만, 용의자 특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본사와 서버를 둔 블라인드의 경우, 처음 가입할 때 한 번 이메일 인증만 하면 이후에는 앱 서버에 접속자 정보(통신 로그)가 남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명예훼손성 문제가 발생해도 가해자를 특정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서버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도 수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리걸테크산업협회장인 구태언 변호사는 “미국 등 해외에선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내 수사기관의 요청에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다”며 “특히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실명 인증이 필요없는 이메일 인증이 해외에 일반화 돼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인터넷 준실명제가 시행되더라도 제재 수단이 과태료 처분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해외업체들이 실명 인증을 거부해 시정명령을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 통신망 사용 중단이나 국내 영업정지 같은 불이익을 법문에 명문화 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2007년 인터넷실명제 당시에도 주민등록번호 인증이 의무화된 국내업체들에게만 적용되는 역차별적인 제도라는 비판이 있었다”며 “과태료 처분은 솜방망이 제재에 불과한데, 해외업체들에 대한 강도높은 제재가 불가능하다면 인터넷 준실명제는 유명무실한 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