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4월 30일 오후 4시 30분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국내 제지사들의 가격 담합으로 인쇄용지 가격이 3년 새 70% 넘게 급등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출판·인쇄업계가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적발로 위법성이 확인된 만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플레이션'으로 번진 제지사 담합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LKB평산은 최근 주요 제지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신문사와 출판사, 인쇄업체 등을 대상으로 소송 참여 제안서를 배포했으며, 일부 업체들은 참여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3일 인쇄용지 판매 가격을 담합한 무림SP(001810), 무림페이퍼(009200), 무림P&P, 한국제지(027970), 한솔제지(213500), 홍원제지 등 6개 제지사에 총 3383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다섯번째로 큰 금액이라고 한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 업체들은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최소 60차례 이상 회합을 열고, 모두 7차례에 걸쳐 인쇄용지 가격 인상을 합의·실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담합의 결과 인쇄용지 가격은 평균 71% 상승했다. 인쇄용지는 책과 교과서, 잡지 제작에 쓰이는 핵심 원재료다. 가격 급등은 곧바로 출판·인쇄업계의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가됐다.
실제로 최근 출판업계에서는 이른바 '북플레이션(book+inflation)'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담합 기간인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정가를 인상한 도서는 2만8296종에 달한 반면, 가격을 내린 도서는 4531종에 그쳤다. 값 내린 책보다 올린 책이 6배 이상 많았던 셈이다. 당시 출판업계는 종잇값 상승을 가격 인상의 주된 이유로 꼽아왔다.
◇법조계 "손해배상 책임 인정 가능성 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 조사로 담합 사실과 가격 상승 간 인과관계가 확인된 만큼,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LKB평산은 담합 기간 인쇄용지 매입액의 약 10%를 손해액으로 산정해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컨대 해당 기간 5억원어치 인쇄용지를 구매한 업체라면 5000만원 수준의 배상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다만 법원 감정과 경제 분석에 따라 최종 인정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소송에는 담합 기간 중 해당 제지사 제품을 구매한 업체라면 참여할 수 있다. 제지사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유통사나 대리점을 통해 인쇄용지를 공급받은 출판사와 신문사, 홍보물 제작업체 등도 포함된다. 일반 소비자 역시 구매 사실을 입증할 경우 참여가 가능하다.
LKB평산 관계자는 "담합 기간 인쇄용지 판매 가격이 70% 이상 오른 만큼, 이번 사건이 시장에 미친 파급력이 상당했다"며 "출판업계가 적극적으로 소송에 참여해 피해를 회복하고 그 결과가 소비자에게도 환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안은 최근 이어지고 있는 '담합 손해배상 소송'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앞서 지방의 한 제과업체 대표는 설탕·밀가루 가격 담합 혐의를 받는 제당·제분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대한제과협회 역시 집단 소송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