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인이 손님에게 “굿을 해야 화(禍)를 면하고 복(福)을 받을 수 있다”며 굿값으로 거액을 받았다가 사기죄로 기소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엇갈린다. ‘신내림’ 굿값으로 5억원을 받은 무속인은 무죄가 된 반면 ‘로또 당첨’ 굿값으로 2억원을 받은 무속인은 유죄가 됐다.

지난 2022년 3월 4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금성당 샤머니즘 박물관에 각 지역 굿에 쓰이는 무당칼, 오방기 등이 전시돼 있다./윤예원 기자

◇“굿 목적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기죄로 처벌 못해”

서울 중구에서 법당을 운영하는 무속인 A씨는 2020년 5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손님으로 찾아온 피해자 5명에게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집안에 남편이 죽는다” “신내림을 받으면 돈방석에 앉을 것이다” 등으로 말하며 굿을 권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돈을 내고 천도재, 신내림 굿, 영혼결혼식 등을 진행했다.

이렇게 A씨가 2년 동안 41차례에 걸쳐 각종 굿을 하며 피해자들에게 받아 챙긴 돈은 5억1700만원에 이른다. 이후 피해자들은 “A씨 말대로 굿을 했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다”며 고소했고, 검찰은 A씨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판사 박소정)은 지난 8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통적 관습에 의한 무속 행위 범주에서 이뤄졌다면 단순히 굿 요청자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것으로는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무속인 경력과 활동이 있는 점 ▲피해자들이 A씨와 합의해 굿을 진행한 점 ▲A씨가 일반적인 굿의 개념과 형식에 따라 굿을 시행한 점 ▲굿값이 시세에 비해 특별히 비싸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검찰이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지난 4월에도 나왔다. 서울북부지법 형사7단독 김선범 판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B씨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법당을 운영하던 B씨는 몸이 아파 점을 보러 온 피해자들에게 “퇴마 굿을 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며 굿을 권유하고, 8차례 굿을 해 총 1억원 가량을 굿 비용으로 받았다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B씨가 굿당을 운영하고 신내림 굿도 받는 등 무속인으로서 경력과 활동이 있는 사람”이라며 “비록 요청자가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당이 요청자를 속였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이 사건에서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대법원 ”굿이 전통적 관습 범위 벗어났다면 사기죄 처벌”

이와 반대로 굿값을 받은 무속인이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무속인 C씨는 “로또에 당첨되려면 굿 비용이 필요하다”며 피해자에게 총 23차례에 걸쳐 현금과 금 40돈 등 총 2억5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경찰 조사에서 “누가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하면 그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내가 알면 내가 로또를 산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당초부터 로또에 당첨되게 해줄 능력과 의지가 없으면서 피해자를 속여 돈을 받아 챙긴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1심은 C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는 마치 자신에게 로또 복권에 당첨되게 해줄 능력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속였다”고 판단했다. C씨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역시 유죄로 판단했다. “C씨의 행위가 전통적인 관습으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결국 C씨는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또 무속인 D씨는 아내의 정신분열병을 상담하러 온 피해자에게 “아내가 귀신이 들렸으니 기도를 해야 한다”며 수차례 ‘기도비’를 요구해 총 1억원 가량을 챙긴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60시간이 선고됐다.

D씨는 피해자에게 “아내에게 붙은 귀신이 가족들에게도 돌아다니니, 아들 이름을 적어 골프채로 쳐서 액운을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그는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를 친 것이 액운을 쫓아내는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또 D씨는 기도비 명목으로 챙긴 돈을 신축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공사 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대법원은 “무속인이 피해자에게 불행을 고지하거나 길흉화복에 관한 어떤 결과를 약속하고 기도비 등 명목으로 대가를 받은 경우, 전통적인 관습으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판결하고 있다. D씨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D씨가 주장하는 행위들은 경험칙상 전통적 관습에 의한 무속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