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DALL·E 제작

프로 골퍼 A씨는 한국프로골프협회를 상대로 ‘출전 정지 무효 확인’ 소송에 이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발단은 지난 2019년 협회가 주관한 골프 대회에서 다른 선수가 “A씨가 애초 볼 마크를 했던 지점보다 홀컵 방향으로 3cm 가까운 지점에 볼을 놓고 퍼팅하는 ‘오소(誤所) 플레이’를 했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오소 플레이’는 골프 공을 올바른 위치가 아닌 곳에 놓고 친다는 뜻이다. ‘Playing from Wrong Place’라는 영어 골프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선수가 고의적으로 공을 유리한 위치로 옮겨 놓는 부정행위이기 때문에 적발되면 2벌타를 받게 된다.

당시 대회에서 A씨도 경기위원장의 판정에 따라 오소 플레이에 대해 벌타를 받으면서 스코어가 나빠졌다. 이어 협회는 A씨가 의도적으로 공 위치를 옮겼다고 판단하면서 5년간 대회 출전을 정지하는 징계를 내렸다.

그러자 A씨는 같은 해 협회를 상대로 출전 정지 처분에 대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 과정에서 협회가 A씨에 대해 출전 정지를 의결하면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상벌위원회규정에는 의도적인 오소 플레이로 출전 정지 이상 징계를 내릴 경우 ‘위원회 개최일 7일 전에 징계 대상자에게 사유를 명기해 통보하여야 한다’고 돼 있었는데 A씨에게는 6일 전에 통보가 됐다는 것이다.

이 소송의 1심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4부는 2022년 1월 “협회가 A씨에게 내린 5년 출전 정지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오소 플레이를 한 상황을 보더라도 A씨가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거나 당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출전 정지 5년의 징계 처분을 할 정도로 중한 경우에 속한다고 볼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을 맡은 수원고법 민사7-1부도 2022년 11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오소 플레이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면서 “협회가 (징계 과정에서) 출석 통지 절차를 위반하고 A씨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중대·명백한 절차상 하자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작년 3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한편 A씨는 2020년에는 협회, 경기위원장 등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A씨는 협회 등의 불법 행위로 1부 투어에 나가지 못하고 2부 투어를 뛸 수밖에 없게 돼 상금과 광고 수익을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프로 전향 다음 해인 2018년에 1승을 거둔 바 있다.

그러나 A씨는 1심에서 패소했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민사12부는 올해 5월 “협회 등이 A씨를 몰아내려는 의도 아래 고의로 명목상 징계 사유를 내세우거나 만들어 징계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등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징계가 무효라 하더라도 ‘회원을 몰아내려는 의도’로 징계권이 행사된 게 아니라면 불법 행위는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항소심 두 번째 변론 기일이 오는 11월 7일 서울고법 민사33부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