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거주자가 국내법을 위반해 처벌받을 것을 알고도 특별한 이유 없이 귀국하지 않았다면 그 기간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7월 31일 국제조세 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2억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주로 홍콩에서 거주하는 사업가 A씨는 2016년 2월 29일 기준 스위스 계좌에 약 220억원을 외화로 보유하고 있었지만,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2022년 8월 기소됐다.

국세조정법은 해외금융회사에 개설된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한 거주자 중에서 해당 연도의 매월 말일 중 보유 계좌의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계좌정보를 다음 연도 6월 1일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에 따라 A씨는 2017년 6월 30일까지 신고를 해야 했다.

재판의 쟁점은 공소시효 완성 여부였다. A씨는 공소시효 완성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22년 4월22일 홍콩으로 출국해 체류하다가, 공소시효 기간 5년이 지난 2022년 7월 28일에서야 귀국했다.

A씨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홍콩에서 가족과 거주하고 있었을 뿐,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지방국세청장은 2022년 5월 27일 A씨의 해외 금융 계좌를 조사하기 시작, 위반 행위를 적발해 2022년 6월 7일 피고인의 세무 대리인을 통해 문답 조사를 실시하고 20억원의 과태료 부과를 사전 통지했다. A씨는 당시 조세·회계 전문가 등을 통해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재판부는 적어도 이때부터는 A씨가 처벌 가능성을 알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253조 3항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25억원을 선고받았다. 다만 2심은 형이 무겁다고 판단해 벌금을 12억500만원으로 감액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홍콩으로 출국한 이후 중간에 이 사건 위반 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곧바로 국내로 들어오지 않았다”며 “달리 피고인이 곧바로 국내로 들어오지 아니한 특별한 객관적 사정에 관한 자료 내지 정황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국외에 체류해 이 사건 위반 행위에 의한 범죄의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공소시효인 5년이 도과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