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서 홀인원(Hole In One·파3홀에서 티샷한 공이 홀컵에 바로 들어가는 것)을 했을 때에는 축하금조로 50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지난 1986년 국내에 출시된 ‘골프보험’에 이런 특약이 생겼다. 원래 골프 도중 생긴 상해나 골프용품 손상 등을 보장해주는 상품인데, 보험사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홀인원 특약을 추가한 것이다. 당시 보험료는 연간 8000~9000원. 짜장면 한그릇이 40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보험료나 홀인원 보너스 모두 고액이었다. 전 국민의 약 10%(영국왕립골프협회 추산 작년 기준 535만명)가 골프를 치는 지금과 달리 1980년대엔 골프가 상류층의 고급 사교 활동이었다.

‘홀인원 보험’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요즘은 홀인원 축하 비용 수백만원을 지원해주는 상품이 대세다. 홀인원을 하면 동반자들과의 축하 식사, 기념품 제작, 추가 라운딩 등으로 크게 한턱을 쏘는 관행이 있다. 국내 9개 손해보험사에서 출시한 홀인원 보험 가입건수는 2019년 5000건을 밑돌다가 작년 5만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홀인원을 한번에 성공할 확률은 일반인은 1만2000분의 1, 프로선수는 3000분의 1로 알려져 있다.

홀인원 보험은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평생 한번 할까 말까한 홀인원을 5년 연속 하거나, 1년에 세번씩 한 뒤 보험금을 탄 사람들과 보험사가 민사 소송을 벌였다. 이런 사건에서 법원은 사기라는 명확한 증거 자료가 없는 이상 약속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있다. 반면 홀인원을 안 했는데 한 것처럼 동반자, 캐디와 입을 맞추거나 허위 영수증을 제출해 보험금을 타낸 사람들은 사기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기도 한다.

국내 한 골프장.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뉴스1

◇“5년간 홀인원 5번… 조작 증거 없으면 보험금 줘야”

국내 한 보험사의 홀인원 보험에 가입한 A씨는 2010년 6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홀인원을 5번 하고 보험금 15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보험사는 홀인원 확률이 극히 낮고, 홀인원을 한 일부 경기의 동반자가 같다는 점을 근거로 조작이 의심된다며 A씨를 상대로 보험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지난 2015년 광주지법 목포지원 민사1부는 보험사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가 “5차례 홀인원을 기록하고 일부 동반자가 겹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보이지만 홀인원이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A씨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처럼 법원은 보험사가 고객을 상대로 ‘홀인원 보험 사기’가 의심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조작을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한다.

또 법원은 여러 번 홀인원을 했을 때 일부 동반자가 겹치더라도 ‘캐디가 모두 다른 이상’ 사기 가능성이 낮다고 판결한다. 2016년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국내 한 보험사가 2011년 한 해 3번 홀인원해 보험금 600만원을 받은 가입자 B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무효확인 및 보험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보험사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홀인원 조작 증거가 없다는 점과 “세 차례 홀인원할 때 캐디가 모두 달랐다”는 이유를 들었다.

8월 4일 프랑스 기앙쿠르의 르 골프 나시오날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골프 남자 개인 스트로크 플레이 최종 라운드에서 관중이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 EPA연합뉴스

◇동반자 안 볼 때 골프공 발로 툭 넣거나 허위 영수증 냈다가 ‘덜미’

반면 캐디와 짜고 홀인원을 한 척 보험금을 탄 사람은 보험사와 수사당국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받기도 했다.

C씨는 지난 2017년 9월 전북의 한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했다며 보험사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7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C씨가 가입한 여러 개의 홀인원 보험 중 하나를 판매한 보험사가 ‘보험 사기가 의심스럽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경찰·검찰 수사 결과 C씨는 골프장 7번 홀에서 티샷을 한 뒤 홀컵 근처에 있던 공을 발로 밀어 넣은 뒤 “홀인원을 했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C씨는 라운딩 중 캐디에게 “홀인원을 한 것처럼 해달라”고 부탁했고 캐디도 이에 응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대전지방법원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씨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캐디 D씨에겐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홀인원 보험 사기로 기소된 사례 대부분은 허위 영수증을 제출한 경우다.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보험설계사 E씨는 지난 2011~2014년 다른 보험사의 홀인원 보험에 가입한 뒤 2014년 홀인원을 했다. 그는 이튿날 한 골프용품점에서 500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이를 곧바로 취소하고 보험사엔 결제 영수증을 제출해 500만원을 받았다. E씨는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으나 보험사와 합의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작년 금융위원회가 보험설계사 등록 취소 처분을 했다. 이에 E씨는 서울행정법원에 설계사등록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E씨는 “어차피 (500만원을) 지출할 예정이었는데 개별 결제마다 영수증을 내기 번거로워 영수증을 일단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E씨는 실제로 홀인원을 하고 홀인원 비용으로 800여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재판부는 “설령 결제를 취소한 후 홀인원 관련 비용을 지출한 게 사실이더라도, 결제가 취소된 허위 영수증을 근거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은 보험사를 속이는 행위”라며 금융위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보험설계사인 E씨가 ‘어차피 지출할 것’이라는 이유로 허위 영수증을 첨부한 것은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보험업에 종사하며 알게 된 실손 보험제도의 취약성을 이용해 계획적으로 사기를 저지른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8월 4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르 골프 나쇼날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골프 남자 4라운드 9번홀에서 김주형이 퍼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상관없음. / 연합뉴스

◇모바일 뱅킹 안돼 날아간 ‘홀인원 보험금’ 5400만원…소송서 받아내

일부 보험사는 골프대회를 주최하는 측에게 거액의 홀인원 시상금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을 판매한다. 2000년 초반에 이 보험 가입자가 모바일 뱅킹 문제로 제때 보험료를 내지 못해 보험금 지급을 거절 당했다가 소송을 낸 일이 있었다.

이벤트 업자인 F씨는 2000년 10월 경기도 포천의 한 골프장에서 개최한 골프대회에서 홀인원에 성공하면 고급 외제승용차를 경품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F씨는 행사 당일, 한 보험사와 차값에 해당하는 5400만원짜리 보험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경기 시작 20분 전 보험사 직원이 알려준 은행 계좌에 모바일 뱅킹으로 보험료 378만원을 보냈다.

그런데 이 계좌가 모바일 뱅킹에 의한 타행 입금을 받을 수 없는 계좌였고, 보험료가 송금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 참가자가 홀인원을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F씨는 다른 계좌로 보험금을 냈지만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F씨는 곧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2년 1심은 “계좌이체 실패로 입게 될 불이익에 대한 위험 부담은 본인이 져야 한다”며 F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다음 해 2심은 “첫 번째 송금 당시 보험료가 정상 납부됐다고 원고가 믿을 만했고 보험료 지연 납부의 주된 이유는 보험사 직원이 폰 뱅킹 방식 입금이 안 되는 계좌를 알려줬기 때문”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