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브랜드 쇼파드의 '아이스큐브'./쇼파드 홈페이지 캡처

국내 예물 업체 A사를 상대로 같은 업계의 B사가 작년 10월 특허법원에 ‘디자인 등록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A사가 등록한 반지 디자인이 스위스 고가 보석 브랜드 쇼파드(Chopard)의 반지 ‘아이스큐브’ 디자인과 거의 같아 독자적 디자인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한 업체가 디자인을 등록하면 다른 업체들은 그 디자인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 재판에서 특허법원은 A사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사 반지 디자인이 쇼파드의 아이스큐브 디자인과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들로 인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체적으로 상이한 심미감(審美感)을 느끼게 한다”고 판단했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심미감은 디자인 관련 소송에서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워드”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상이한 심미감’이 있다고 평가받으면 독자적 디자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 반면 ‘전체적으로 유사한 심미감’에 그친다면 디자인 등록을 하지 못하게 된다.

A사가 등록한 디자인의 반지(왼쪽)와 쇼파드 아이스큐브./키프리스·쇼파드 홈페이지 캡처

◇디자인 등록 여부, ‘심미감’이 가른다

디자인보호법은 그 디자인이 속하는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쉽게 창작할 수 있는 디자인은 등록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루 알려져 있거나 쓰이고 있는 디자인은 별도로 등록할 수 없다.

법원은 ‘심미감’을 기준으로 디자인 등록 허용 여부를 가린다. 심미감은 특정 디자인을 접하는 소비자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수한 취미감, 유행감, 편리감 등을 느낄 수 있는 미적 인상을 뜻한다.

A사 사건에서 특허법원은 “A사 반지의 바깥 면은 불규칙한 크기의 사다리꼴 조각이 연결돼 환형을 이루는 점에서 사각형 모양이 특별한 변형 없이 일렬로 배열된 쇼파드의 아이스큐브와는 다른 새로운 심미감을 창출하는 것으로 창작 수준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사 반지의 안쪽 면도 입체감을 가진 조각 형태로 연결돼 있어 안쪽 면이 민무늬로 처리된 쇼파드의 아이스큐브와는 상당한 심미감 차이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특허법원은 앞서 A사 반지 디자인 등록을 인정한 특허심판원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다만 B사가 특허법원 결정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갔다.

대법원도 심미감을 기준으로 디자인 등록 허용 여부를 판정하고 있다. “외관을 전체적으로 대비 관찰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이한 심미감을 느끼게 하는지 여부” “지배적 특징이 유사하다면 세부적인 점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유사하다고 보아야 할 것”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C사가 디자인한 코트(오른쪽)과 이를 유사하게 모방한 코트(왼쪽)./키프리스 등 캡처

◇디자인 분쟁 한해 수백건…“전체적인 심미감 유사하면 디자인 등록 안 돼”

유명 브랜드를 비롯해 소규모 기업이 등록한 로고나 반지, 의류 등의 디자인을 두고 등록 무효 공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특허심판원에 디자인 관련 심판 청구가 한해 300~600건이 제기되고 있다. 특허심판원 판단에 불복하면 특허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다.

심미감이 유사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디자인 등록을 할 수 없게 된다. C사는 자신의 코트와 유사한 디자인을 등록한 D사를 상대로 등록 무효 소송을 냈다. 이 사건에서 특허법원은 C사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목 부분의 칼라 모양의 유사성 ▲양면으로 뒤집어 입을 수 있다는 특징 ▲목둘레부터 하단까지 중심부에 길게 구성된 ‘롱 칼라 디자인’ 등을 근거로 D사 코트에 별도의 심미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C사 코트를 상업적, 기능적으로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앞서 특허심판원이 D사의 손을 들어준 것과 정반대 판결을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