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대법원이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가 벌어들인 35억원을 추징하도록 명령한 하급심 판결을 파기했다. 수익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도박개장)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35억5000만원의 추징을 명령한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3년 5월부터 베트남 호찌민과 중국 선전(심천) 등에서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개설해 2~3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회봉사명령 200시간과 3억2000만원 추징을 선고했다. A씨는 항소했고, 2심은 형을 늘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도 400시간, 추징액도 35억5000만원으로 늘었다.

2심 재판부의 추징액은 A씨가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점을 근거로 책정됐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월 경비가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에 “매달 1억원 정도가 나간다”는 취지로 답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매달 1억원가량을 책정해 범죄수익을 34억원으로 산정했다. 여기에 1억5000만원을 더 산정했다. A씨가 검찰 조사에서 인정한 순수익금을 범행 기간인 34개월로 나눈 금액이다.

대법원은 “범죄수익과 실행 경비는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자금 출처를) 특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이 진술한 범죄 실행 경비가 바로 범죄수익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법리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비춰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범행 기간인 34개월 동안 얻은 범죄수익이 매월 1억원 정도로 일정했을 것으로 보기 어렵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막연한 추측에 의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수익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1억5000만원에 대해 “단순히 이 사건 범행 기간이 전체 범행 기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안분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도박 사이트 운영 기간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한편 A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끝까지 범죄수익의 전체 규모를 함구해 왔다고 한다. 그는 이번 재판과 별개로 유사 범죄로 따로 기소돼 지난 2016년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