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불법이 없다는 법원 1심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의 이익이나 의사가 도외시된 바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이 주주들이 삼성과 국가를 상대로 불법 합병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에서 계류 중인 삼성물산 합병 의혹 관련 민사소송은 총 4건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심모씨 등 32명이 삼성물산과 이 회장,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2억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이번 달 29일로 지정했다. 이 사건 소장은 2020년 2월 17일에 접수됐는데, 약 4년 만에 기일이 잡힌 것이다.

이외에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도 주식회사 A사 등 19명이 삼성물산, 삼성바이오, 이 회장 등을 상대로 2억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을 심리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22년 5월 첫 변론을 열었지만, 이 회장의 삼성물산 합병 의혹 1심 사건의 결과 본 뒤 변론을 진행하기로 한 상태다. 주주 3명이 이 회장 등을 상대로 3000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도 민사합의30부에 배당돼 있다.

세 사건 모두 양측의 대리인이 동일해 앞으로 열릴 변론에서 주장할 내용도 유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고 측은 법무법인 지향이, 피고 측은 법무법인 화우 등이 대리한다. 원고 측은 우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 합병 비율을 이 회장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그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고 측은 ‘정당한 합병’이었다며 원고 측의 모든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서울고법에는 삼성물산 주주 14명이 2020년 국가를 상대로 약 9억원을 청구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위법 행위로 합병이 성사됐으니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당초 72명이 제기한 소송이었지만, 1심이 문 전 장관과 주주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하면서 주주 약 60명이 소송에서 빠졌다.

서울 강동구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옥. /뉴스1

이 모든 소송에 지난 5일 이 회장 1심 판결이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원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재판부가 삼성이 이 회장의 승계를 위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데 1심 재판부가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사업적 목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시가 이상으로 회사·주주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었던 기회 이익이 상실됐으므로,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객관적 증거에 비춰볼 때 주주에 대한 임무 관련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병비율 관련 임무 위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소사실은) ‘추상적 가능성’에 불과해 그 자체로 배임죄의 손해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이 회장 등의 2014~15년 회계연도 거짓공시 및 분식회계 혐의 또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로직스 재경팀은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탐색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며 “분식회계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민사소송에서 원고의 주장과 이 회장의 형사사건이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형사사건 1심 판결이 유력한 근거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소송을 낸 주주들은 삼성물산과 관련해 본인들에게 유리한 판결 등을 근거로 반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22년 4월 대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합병을 거부한 일성신약 등 주주들에게 제시된 주식매수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민사소송 원고들은 삼성물산 합병 관련 다수 사건에서 합병을 문제 삼은 판결을 근거로 논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