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공정거래법을 따라 진행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대리점법 위반 형태의 거래가 워낙 많고, 강도가 높지만 난공불락처럼 유지되고 있습니다."
2년 전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수입차 회사 A사 소속 딜러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수입차 브랜드 'B'의 차량을 수입해 소비자에게 되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수입차 판매 신화를 달성하는 시기에 수입차 판매 딜러들이 로펌을 찾아 호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13년 1월 대리점을 상대로 남양유업이 물건을 강매한 사건, 이른바 '남양유업 사태'가 보여준 화두는 대리점에 대한 공급업자의 '갑질'이었다. 이를 계기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지난 2016년 12월부터 '대리점 보호'를 골자로 한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에서 대리점에 대한 '판매목표 달성·물량 밀어내기' 등의 관행은 계속됐다. 차량 공급이 끊기면 대리점들이 압박을 느끼게 되고 이는 딜러들의 '출혈 경쟁'으로 이어진다. 특히 판매량이 많은 독일 3사(아우디·메르세데스-벤츠·BMW)에 비해, B처럼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회사의 경우 이런 특징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법무법인 바른은 딜러 업체를 대리해 B 차량의 공급업체인 A사 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을 상대로 승소를 거뒀다. 지난해 12월 대한상사중재원(KCAB International)으로부터 '대리점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판정을 이끌어냈다.
중재판정부(의장중재인 오재창)는 공급자가 사실상 갑질을 했다고 보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침해하고 불이익을 강요해 공정한 거래를 침해하거나 그런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 출혈 큰 대리점의 호소... 묵살한 공급업자
A사는 고급 수입차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캐딜락 차량의 소비자가격을 높게 측정했다. 하지만 판매 실적이 부진하자, 할인정책을 병행했다. 할인금액에 대한 부담 비중은 A사와 딜러가 5대5였다. 예를 들어 A사가 정한 B 차량의 소비자가격이 6130만원일 경우, A사의 할인정책을 따라 판매된 가격은 5230만원이다. 할인된 900만원 중 A사의 부담금액은 450만원, 딜러의 부담금액도 450만원(소비자가격의 7%)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차량 제작비 등을 고려할 때 차 1대를 팔면 1700여만원이 남았고, A사가 1355만원, 딜러가 400만원의 이익을 가져갔다.
딜러의 수익 400만원은 차량 수입 비용과 A사의 할인 판매정책을 따른 각종 비용까지 투입한 뒤 얻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딜러들은 이 수익마저 줄이면서 차량을 팔았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남은 수익으로 딜러십 계약 유지를 위한 서비스센터·전시장 운영, 무상보증기간, 시승차구입비도 부담해야 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적자가 계속되자, 딜러들은 2016년 4월 A사에 할인판매 비율이 5%를 초과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의 공문을 보냈다. A사가 정한 할인판매 비율(소비자가격의 6~7% 상당)의 금액을 부담하니 "도저히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딜러들에게 최소한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A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공문을 보낸 후에도 5%를 초과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후 2019년까지도 딜러들의 적자는 이어졌다. 이 같은 거래 방식으로 계약기간(2013~2020년) 8년 간 차량 판매수익 137억원 중 A사에겐 18%(114억원), 딜러들에겐 4%(23억원)만 돌아갔다. 폐업할 위기에 놓이자 딜러들은 그해 11월 공정위 분쟁조정위원회에 '대리점법 위반'을 이유로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결렬됐고, 이후 사건은 중재원으로 넘어갔다.
<대리점법 7조는 공급업자로 하여금 대리점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구체화한 시행령 제4조 제1호는 공급업자의 필요에 따라 판매촉진행사를 실시하면서 그 비용·인력 등을 대리점이 부담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 '8년치 판매원장' 분석, 대리점법 위반 입증한 한방
딜러들은 '수익의 불균형'이 대리점법 7조를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차량 브랜드의 지명도가 낮아 딜러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할 때 막대한 노력과 비용이 투입됨에도 할인판매 비용마저 부담해 손해가 크다"는 취지였다. 여기에 시승차 구입 비용이 추가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구입 강제'를 금지한 대리점법 6조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A사가 판매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시승차 구매를 강요해 목표를 채우도록 한 점도 강조했다.
바른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8년치 판매원장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A사의 할인판매 정책으로 피해를 봤다는 점을 입증하려면 구체적인 피해 액수를 특정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전승재 변호사(변호사시험 3기)는 8년간 팔린 891대의 권장소비자가격과 할인정책 중 A사의 부담비율, 강제로 딜러들에게 부담된 비율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138대가 실제 적자를 보고 판매됐다는 구체적 손해를 특정했다.
그러면서 할인판매 비율이 사전 논의가 아니라 '사후 공지'였다는 주장도 펼쳤다. 할인판매 비율(5%) 초과 부담의 적법성과 관련해 A사를 대리한 법무법인은 "사전에 논의된 내용"이라며 맞섰다. 바른은 A사와 딜러가 주고받은 공문과 회의자료 등을 조사·분석했다. 이를 통해 'A사가 할인을 얼마나 할 것인지' '그 중 딜러들의 분담금은 얼마인지' 질문에 대한 A사측의 답변이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A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바른은 다른 수입차 브랜드의 거래 행태도 분석했다. 시트로엥의 경우 딜러가 고정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다는 점, BMW의 경우 공급업자가 할인비용 100%를 부담하는 점, 도요타의 경우 딜러에게 공식 인정되는 이익이 소비자가격의 15%인 점, 아우디의 경우 차종별 공급업자와 대리점 간 할인비율이 다른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는 A사가 상시 할인으로 인해 손해를 대리점에 부담한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 '딜러 보호' 목적의 대리점법... 취지 살린 결과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재판정부가 공문을 보낸 2016년 4월 이후부터 발생한 딜러들의 손해를 모두 인정한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할인판매 비용이 소비자가격의 5%를 초과할 경우 대리점 사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는 사정을 A사가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딜러들과 협의할 의무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딜러들의 의사에 반해 수익에 비해 과다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해 불법행위를 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중재판정부는 미국의 자동차딜러법을 인용했다. 1956년 제정된 이 법은 총판이 딜러에게 강요·협박·위협을 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딜러들의 자유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1983년 미국에서 제정된 자동차가맹점딜러보호법도 인용했다. 중재판정부는 "대리점을 상대로 불공정한 거래가 빈번하게 생기는데, 공정거래법으로 규제가 어려워 (대리점법이) 제정됐다"며 A사와 딜러 간 분쟁에서도 A사가 총판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재판정부는 할인판매 비율 5%를 초과해 생긴 손해를 8억2700여만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5%를 초과해 판매된 444대에 대한 금액을 손해로 인정한 것이다. 이후 A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측은 정정 신청을 냈다. 중재(정정)판정부는 딜러들의 공문 발송(2016년 4월) 전 판매 대수만 인정해 6억63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중재(정정)판정부는 "A사의 불법행위로 취득한 경제적 이익이 상당함에 반해 딜러들은 대리점 사업을 폐업할 수 밖에 없었다"며 "이를 종합하면 5%를 초과해 부담한 비용과 정신적 손해 등에 대해 3배 범위 내에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백 변호사(사법연수원 36기)는 "이런 거래 관계에서 대리점법이 적용된다는 것과 갑질로 인한 손해였다는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손해액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을 경우 3배 한도 내에서 배상해야 한다는 '징벌적 손해배상' 개념이 도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A사는 중재원에 사건이 접수된 이후 딜러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백 변호사는 "이는 명백한 보복조치에 해당한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