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까지 하루 몇 차례 종목을 사고파는 주식 단타(단기 매매)에 빠져 있던 직장인 이모(31)씨는 최근 매매에서 손을 놓았다. 이씨는 "요즘 장이 너무 널뛰니까 거래를 포기하고 종일 스마트폰 주식창만 그냥 들여다보고 있다"며 "폭등하면 한없이 기뻤다가 폭락하면 '내가 그렇지 뭐'란 생각만 들어 조울증 걸릴 것만 같아 투자를 일단 중단했다"고 했다.
12일 코스피가 4.63% 오른 8123.62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0일 4.52% 급락했다가 11일 0.43% 오르며 숨을 고른 뒤 하루 만에 급반등했다. 코스피는 앞서 지난 8일과 9일에도 하루 8%씩 폭락과 폭등을 반복했다.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장세'에 국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큰 수익을 올렸다가도 하루 만에 주식 계좌가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등 투자 난도가 커지면서 1500만 개미 투자자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코스피 변동성 주요국의 2~3배
코스피는 이달 들어 기록적인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 8800을 돌파했지만 이후 3거래일 내리 하락하면서 7400대까지 밀려났다. 9일에는 방향을 틀어 하루 만에 8.18% 폭등했다가 10일 또다시 4.52% 급락하는 등 어지러운 장세가 연출됐다. 12일 하루만 해도 장중 8400선을 탈환했다가 8000선까지 후퇴하는 등 400포인트 수준의 변동 폭을 보였다.
최근 코스피의 변동성은 주요국 대표 주가 지수에 비해 크다. 이달 들어 코스피의 하루 평균 등락률 절대값은 약 4.1%대를 기록했다. 일본 닛케이(1.7%)나 나스닥(1.3%)의 2~3배 수준의 변동세를 보였다는 얘기다. 경기 하남시에 사는 한모(41)씨는 "밤마다 미 증시에서 마이크론·인텔과 같은 주요 반도체주의 움직임을 보면서 다음 날 코스피의 향방을 가늠하곤 했는데, 요즘은 코스피가 미국 증시에 비해 과도한 등락률을 보여 선뜻 투자하기 무서워졌다"며 "섣불리 나섰다가 돈을 잃지 않을까 걱정됐다가, 가만 있으면 나만 돈을 못 버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 사이에서 스트레스만 커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의 반도체주 쏠림과 단기 급등세를 변동성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코스피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극소수의 대형 반도체주에 기대 가파르게 오른 만큼 더 크게 요동치는 것"이라며 "코스피가 다양한 업종이 비중 있게 포진해 있는 나스닥보다 반도체주 중심인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레버리지에 올라탄 개미들은 비명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단일 종목의 등락률을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에 투자한 이들 사이에서 공포가 번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유모(31)씨는 "뒤늦게 주식 투자를 시작한 만큼 더 공격적으로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달 초 적금을 깨고 SK하이닉스 레버리지에 들어갔는데 수익률이 -20%대"라며 "비슷한 시점에 투자를 시작한 우리 회사 과장님에게도 이 종목을 추천했는데, 과장님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걸 보고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유씨처럼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몰린 투자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12일 ETF체크에 따르면 최근 1주간 자금 순유입 '톱5'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3개였다. 순유입 규모 2위인 KODEX 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에 9525억원, 3위인 KODEX 삼성전자 단일 종목 레버리지에 7147억원이 몰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국내 레버리지 ETF 교육 수료자는 87만명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국내 '빚투(빚내서 투자)' 규모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국내 신용 거래 융자 잔고는 지난달 29일 사상 처음 39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11일에도 36조6565억원을 기록하는 등 최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한편, 그동안 증시를 떠받치던 개인 투자자들은 12일 코스피에서 4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코스피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자 투자에 피로감이 누적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날 외국인은 25거래일 만에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로 돌아서면서 2조원 넘게 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