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마침내 8000선 고지를 정복하며 한국 자본주의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불과 1년 전 2500선에 머물던 지수가 단기간에 3배 이상 폭등한 것으로, 이는 19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 기록마저 경신하는 전무후무한 속도다.
과거 일본 닛케이225 지수가 1만 선 돌파 후 3만 선에 도달하기까지 약 4년이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코스피의 기세는 경이적이다. 당시 일본의 연간 상승률이 40%대였던 반면, 현재 코스피는 저점 대비 220%의 상승률을 단 1년 만에 달성했다. 일본보다 4배 이상 빠른 '광속 질주'다.
이 광풍의 주역은 단연 반도체 투톱이다. 1년 전 5만 원대였던 삼성전자는 노사 파업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29만 원 선을 돌파하며 5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파업 타결 시 유입될 '보복성 매수세'가 강력한 하방 지지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약진은 더욱 독보적이다. 19만 원대였던 주가는 글로벌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발판 삼아 190만 원을 돌파, 10배에 달하는 상승 폭을 기록하며 지수 견인의 일등 공신이 됐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경기와 주식시장을 주도하는 반도체 수출 경기 모멘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내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예상보다 강력한 데다 중국마저도 AI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커 국내 반도체 수출 경기는 상당 기간 양호한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며 "특히 대중국 수출 모멘텀 회복이 국내 수출 경기에 우호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의 강세 폭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시가총액 1~3위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스퀘어 주가가 5월에만 각각 20~40%대 급등하며 코스피 상승률을 크게 상회했다"며 "5월 코스피 시가총액 상승분의 80.4%를 차지하며 주도주 역할을 뚜렷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증권가에서는 밸류에이션 논리보다 강력한 수급이 코스피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주가수익비율(PER) 등 전통적 지표뿐 아니라 강한 매수세 역시 장을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워낙 좋다 보니 주가수익비율(PER)의 분모인 이익(E)이 커지면서 밸류에이션 부담이 낮아진 상태"라며 "지수가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이익 성장이 이를 뒷받침하면서 투자자들에게는 여전히 '사야 할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명분과 역대급 유동성이 충돌하는 국면에서 코스피 8000선 안착 여부는 결국 반도체 실적의 지속성과 수급의 연속성에 달려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대준 연구원은 "증시 호황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도체 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시장에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노사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데 협상 여부에 따라 주가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