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65)씨는 은퇴 직후 퇴직금과 여윳돈을 합쳐 5억원가량 되는 노후 자금 운용 방안을 두고 한때 고민에 빠졌었다. 주변에서는 주식 투자를 권했지만, 노후 자금의 원금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긴 부담스러웠다. 그가 선택한 투자는 한국도로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행한 우량 공사채(AAA 등급) 3종이었다. 만기 3년짜리 채권을 꾸준히 사들였더니, 매달 이자로 130만원가량씩 수입이 생겼다. 투자한 지 2년이 지나자 채권 가격도 소폭 올랐다. 김씨는 "예금보다 높은 이자에, 고위험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요즘 은퇴자들 사이에서는 현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자산으로 채권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시중은행 예금 금리가 연 2%대에 머무는 사이, 우량 공사채와 회사채 금리는 연 3~4% 수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은행 예금이 예금자 보호 제도를 통해 일정 한도까지 보호되는 것처럼, 정부나 견실한 공공·민간 기업이 발행한 우량 채권도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고금리 장기화는 노후 자산 지킬 기회"

은퇴자가 노후 자금으로 사들인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 약정된 표면 금리대로 이자를 받고 발행 기관이 부실화하지 않는다면 원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 은행 예금 금리와 비교해 채권 표면 금리가 높으면 채권을 선택하는 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등으로 국제 유가와 물가 불안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 금리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 중반대, 우량 공사채 3년물 금리는 대체로 연 3.7~3.8% 수준에 형성돼 있다. 연 4% 초반대 이자를 지급하는 우량 공기업채도 있다.

또한 전쟁 전까지는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우세했지만,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에 대응해 올 하반기쯤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채권 가격, 금리, 만기 이해해야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는 전략과 더불어, 필요할 경우 채권을 중간에 팔아 차익을 거두는 방법도 고려하는 게 좋다. 그러려면 우선 채권 가격과 금리(시장 수익률)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채권 금리는 표면 금리가 아닌 실제 매수·매도 시 요구되는 시장 수익률이다. 가령 시장에서 채권에 요구하는 수익률이 5%에서 10%로 상승했다면, 현재 채권이 주는 수익이 시장 기대보다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채권 가격을 낮춰야 거래가 이뤄진다. 반면 시장에서 요구되는 수익률이 5%에서 3%로 하락했다면 현재 채권의 수익이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따라서 채권 가격을 높여서 팔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 거래하고자 하는 채권의 금리가 높을수록 채권의 가격은 낮아지고, 채권의 금리가 낮아질수록 채권의 가격은 올라간다.

또한 일반적으로 채권 금리는 만기까지 남은 기간이 길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같은 회사가 발행한 채권이더라도 만기가 1년 남은 단기채보다 만기가 5년 남은 중기채의 금리(시장 수익률)가 더 높다는 것이다. 투자자의 투자금이 1년 대신 5년이 묶이는 만큼 더 높은 금리를 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만기가 길어진다고 해서 채권 금리를 무한정 높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채권 금리와 만기 간의 상관관계는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띠는 경우가 많다.

◇만기 다가올수록 오르는 채권 가격

이러한 채권의 가격, 금리 및 만기 간의 관계를 활용하면 채권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자본 차익도 거둘 수 있다. 예컨대 연 4%의 금리로 3년 만기 공사채를 매수한 뒤 1년간 보유하면 해당 채권의 만기는 2년이 남는다. 일반적인 우상향 수익률 곡선 환경에서는 만기가 짧아질수록 요구되는 수익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유통되는 금리도 하락한다. 예를 들어 같은 기관이 발행한 3년물 금리가 연 4%이고 2년물 금리가 연 3.5%라면, 시간이 지나 만기가 2년 남게 된 채권은 더 낮은 금리 기준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처럼 금리가 낮아지면 채권 가격이 상승하므로, 이때 채권을 팔면 자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채권을 단순히 들고 있는 것만으로 시간이 가격 상승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이러한 전략을 '수익률 곡선 타기(롤다운 전략)'라고 부른다. 특히 채권 금리와 만기의 상관관계가 완만한 우상향 곡선이라는 점에서, 만기가 긴 구간보다 짧은 구간에서 가격 상승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하락장 덜 빠지고, 상승장 더 올라

채권 가격과 금리의 상관관계가 '볼록성'을 띤다는 점도 중요하다. 채권 금리(시장 수익률)가 1%포인트 떨어질 때 채권 가격이 오르는 폭이,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가격이 떨어지는 폭보다 구조적으로 더 크다는 뜻이다. 채권 가격과 금리의 관계가 직선이 아니라 곡선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특히 만기가 길수록 금리 변동에 따른 채권 가격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볼록성 혜택이 두드러진다.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구간에서는 중장기 우량 공사채를 담아두면 향후 자본 차익을 크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채권 투자가 처음이라면 높은 가격 변동성을 고려해 남은 만기가 3년 안팎인 채권을 사들이는 게 안전하다.

노후 자산 운용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높은 수익률이 아니라 안정적인 현금 흐름과 원금 보존이다. 채권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자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