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시장에서는 낙관론과 신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인공지능(AI) 생태계 확대에 따라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양사의 실적이 대폭 개선되고 있지만, 단기 급등에 따른 '오버슈팅' 우려도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물론 주가는 기업 실적뿐 아니라 성장률, 물가, 금리 등 거시경제 지표와 전쟁 같은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영향을 받는다. 두 기업의 실적 개선이 이어지더라도 주가가 더 상승할지, 적정 주가는 얼마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익 증가폭이 이례적으로 크기도 하지만, 최소 1~2년 동안은 이익 급증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AI 산업의 발전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이 구조적으로 수혜를 입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경기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모습./연합뉴스

올해 1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57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0% 증가했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 역시 지난해보다 100% 가까이 증가해 37조원을 넘었다.

AI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 센터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덕분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이익 규모가 이들 하이퍼스케일러들을 따라잡았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메타보다 많았다. 삼성전자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낸 글로벌 기업은 애플과 엔비디아 정도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과 주가를 크게 움직인 사업부는 메모리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형컴퓨터(서버)나 노트북, 스마트폰 등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쓰이는 범용 부품인데, 경기 상황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정한 순환 주기가 있다.

그런데 이번 호황은 과거 순환 주기에 따른 호황과는 양상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수차례 경험한 메모리 상승 사이클을 뛰어넘는 가격 상승 트렌드가 현실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두 회사의 매출총이익률(매출에서 제조 비용을 뺀 이익률)이 빠르게 상승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매출총이익률이 30%를 넘으면 수익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총이익률은 70~80%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문이 늘어나는 동시에 수익성까지 대폭 개선된 이유는 삼성전자가 단순히 빅테크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에 그치지 않고, 공급자 우위 구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AI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고객사들은 가격보다 물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덕분에 반도체 제품의 가격 탄력성은 크게 낮아졌다. 고객 주문을 받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제품 가격을 높일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뉴스1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4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 미래에셋증권은 "투자자군의 변화가 감지돼 그간의 밸류에이션 할인 요인을 제거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익 추정치 상향만으로 추가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투자자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이익의 크기보다 이익의 지속성이란 의미다. 내년 분기 영업이익이 10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대규모 이익이 발생하는 시기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 것인지가 향후 주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장기공급계약(LTA)을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실적을 발표한 이후 질의응답에서 "이번 LTA는 상당한 구속력이 있어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계약"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당분간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가격 상승은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아닌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이라며 "고객사는 가격보다 물량 확보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고, 공급 업체는 투자 둔화와 공간 부족으로 단기 증산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돌파하면서 재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월가에선 삼성전자 시총이 1조달러를 넘은 것을 두고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가 단순히 경기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AI 인프라에서 반도체 역할이 구조적으로 바뀌었다는 시장의 판단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전자 시가총액 규모는 글로벌 11위 수준까지 올랐다. 삼성전자보다 기업가치가 높은 곳은 엔비디아(4조7800억), 알파벳(4조6800억달러), 애플(4조1700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3조600억달러), 아마존(2조9400억달러), 브로드컴(2조200억달러), TSMC(1조8600억달러), 아람코(1조7900억달러), 메타플랫폼(1조5400억달러), 테슬라(1조4600억달러) 등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 빅테크와의 밸류에이션 격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은 각각 6.0배와 5.2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애플(34배), 아마존(32배), 알파벳(29배) 등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평균 PER이 30배를 웃도는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투자의 과실을 함께 나누고 있음에도 몸값은 5분의 1 토막이라는 소리다.

한편 SK증권은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주가를 각각 50만원, 3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