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한모(31) 씨는 21일 증시가 열리자마자 삼성전자 10주(株)를 사들였다. 전날 SK하이닉스 5주를 산 데 이어 '사자'를 이어갔다. 한 씨는 "주말에 미국이 이란 화물선을 나포했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코스피가 연이틀 오르는 걸 보고 추가 매수하기로 했다"며 "트럼프 한마디에 수시로 바뀌는 전쟁 상황보다 눈에 보이는 기업 실적에 기대를 걸어볼 셈"이라고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한 와중에도 21일 코스피는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투자자들이 오락가락하는 전황(戰況)보다 반도체 기업 실적과 업황(業況)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 공포 넘어선 반도체 실적

최근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전쟁 공포'를 이겨내는 모양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감행한 이후 코스피는 연이틀 7%, 12%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폭락과 폭등 흐름이 50일 넘게 이어지자 투자자들이 전쟁 충격에 익숙해졌다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타코(TACO·트럼프는 항상 물러선다)'를 반복 학습한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코스피의 반도체 '투 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에 대한 믿음이 강한 반등의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영업이익으로 사상 최대치인 57조원을 발표했다. 오는 23일 실적 발표를 앞둔 SK하이닉스도 1분기 영업이익 40조원 '어닝 서프라이즈'가 예상된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장모(57)씨는 "삼성전자가 조만간 엔비디아를 넘어 세계 영업이익 1위 기업이 된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불확실한 장세일수록 눈에 보이는 숫자를 믿는 게 맞지 않겠냐"고 했다.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10%, 4.97% 오른 21만9000원과 122만4000원에 마감했다.

이달 들어 '한국형 공포 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도 안정화되는 추세다. 21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VKOSPI는 이날 51.63에 마감했다. 지난달 4일까지만 해도 80.37까지 치솟으며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는데 최근에는 잠잠해졌다. 박준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동의 불안은 지속되고 있지만 시장의 관심은 서서히 전쟁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종전 기대감에 따라 증시 방향성이 정해졌는데, 이번 주를 기점으로 각 산업별 이슈가 증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상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미 시장에서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는 더 이상 새로운 변수라기보다는 '반복적으로 가격에 반영돼 온 이벤트'에 가까워진 상황"이라며 "향후 변동성이 확대되더라도 지수의 하단이 견고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코스피 8000 시대 열리나

코스피 신기록 달성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강한 순매수세가 뒷받침됐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날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조원 넘는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를 이어갔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17조6000억원 순매도하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

이는 지난 2월 코스피가 직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와는 정반대 흐름이다. 2월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21조원 넘게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4조351억원 순매수했다.

하지만 최근 종전 기대감과 함께 반도체 업종 중심으로 실적이 확인되면서 외국인들의 대형주 중심의 매수세가 집중됐다. 이달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SK하이닉스(2조1649억원)였으며, 2위는 삼성전자(1조3192억원)가 차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국내 증시에 대한 기대를 잇따라 높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일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기존 7000에서 8000으로 상향 조정했다. 티모시 모 아시아태평양 전략가는 "반도체 업종의 이익 개선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시장 전반에서도 48% 수준의 견조한 이익 성장이 예상된다"며 "보수적인 시나리오에서도 코스피 하단은 약 6250선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JP모건도 코스피 목표치를 최대 8500까지 제시하며 기존 전망보다 1000포인트 이상 상향했다. 이 밖에 모건스탠리와 노무라증권 등 주요 글로벌 IB들도 최근 코스피 상단을 8000~8500선으로 잇따라 높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