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호기의 모습. /한국전력 제공

올해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원자력 ETF가 줄줄이 수익률 상위권을 차지한 모양새다. 데이터센터 등 AI(인공지능) 인프라의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데다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가 각국의 핵심 관심사로 떠오르면서다. 더구나 미국 정부의 원자력 생산 확대 기조, 전쟁 재건 수요 등으로 해외 사업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내 원전 기업들이 20년 만에 '퀀텀 점프' 기회를 맞았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19일 코스콤 ETF체크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 17일까지 국내 ETF 가운데 TIGER코리아원자력이 138.85%로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TIGER코리아원자력 ETF는 두산에너빌리티·현대건설 등 국내 대표 원자력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이어 KODEX건설(119.81%), SOL한국원자력SMR(116.61%), TIGER200건설(112.11%), KODEX원자력SMR(105.73%)이 뒤를 이었다. SOL한국원자력SMR과 KODEX원자력SMR은 대규모 원전 대신 공장에서 표준화된 모듈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식으로 건설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인 SMR(소형 모듈 원자로) 기술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이다.

국내 증시를 사실상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반도체를 제치고 원자력과 건설 관련 ETF가 올해 수익률 '톱5'를 차지한 셈이다. 수익률 1위를 비롯한 상위권에 원자력 ETF가 더 많이 이름을 올렸지만, 테마 전체를 놓고 보면 ETF가 두 개뿐인 건설 ETF의 평균 수익률 115.96%로 가장 높았다.

지난 2024년 10월 23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전시회에 전시된 한국수력원자력의 SMR 모형./뉴스1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AI 전력 수요

원자력 ETF가 주목받는 배경 중 하나는 가파르게 늘어나는 AI 전력 수요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관리하기 위해 데이터센터가 필수인데,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전력 소비량이 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올해 8.2TWh(테라와트시)에서 2038년 30TWh로 네 배 가까이 불어날 전망이다.

이에 원자력 발전이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충당할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원자력은 태양광이나 풍력과 달리 날씨와 계절과 상관없이 24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이 늘어날 전망에 관련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선일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가장 합리적인 가정을 기준으로 예상한 전 세계 신규 원전 설비 용량은 2040년까지 324GWe(기가와트)다. 이 시장에서 한국이 점유율 20%를 가져간다고 하면 연간 원전 수주액은 200억달러 내외"라며 "한국 해외 건설은 원전 모멘텀을 타고 20년 만에 퀀텀 점프할 기회를 맞았다"고 했다. 정의현 미래에셋운용 ETF운용본부장은 "미국의 AI 산업에서 병목이 발생하는 섹터가 반도체와 전력"이라며 "특히 원자력은 향후 중장기적 에너지 정책의 핵심 산업이자 미국이 동맹국 내에서 원자력 공급망을 기대할 수 있는 건 한국뿐"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급부상

이란 전쟁으로 불거진 글로벌 에너지 안보 리스크도 원자력 산업이 부상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이란 전쟁으로 중동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공급 차질이 현실화되면서 각국은 에너지의 자국 생산 확대를 고민하거나 대체 에너지를 찾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우라늄은 화석연료와 달리 소량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지정학적 갈등과 해운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덜 취약한 만큼 주목받는 것이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라늄을 핵심 광물로 사용하는 원자력 특성상 설령 중국이나 러시아가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하더라도 동맹에만 외주를 맡길 수 있는 전략 산업"이라며 "(원자력 발전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했다.

증권사에서는 원자력 관련 기업들의 목표 주가도 줄줄이 높이는 흐름이 포착된다. 신동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은 원전 관련해 타 건설사 대비 월등히 우세한 전략을 보유했다"며 목표 주가를 기존 15만원에서 24만6000원으로 높였다. 미래에셋증권은 GS건설의 목표 주가를 기존 3만4000원에서 4만9000원으로 올렸다. BNK투자증권은 DL이앤씨가 국내 건설사 최초로 미국 SMR 개발사 엑스에너지와 SMR 표준 설계 작업을 수주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목표 주가를 13만원으로 상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