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10곳 중 4곳꼴로 10년 전보다 시가총액이 뒷걸음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폐지된 기업을 감안하면 10년 장투시 이익을 본 기업보다 손실을 본 기업이 더 많았다. 예상치 못한 외부 악재가 닥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경영실적 부진과 기업 쪼개기 상장 등이 10년간 주가가 부진한 원인이었다.

15일 조선비즈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최근 10년 주가 변동을 살필 수 있는 1648개 종목의 시가총액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이달 10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과 2014년 9월 11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을 비교하면 720개 종목(43.7%)의 시가총액이 감소했다. 분석 대상에는 포함하지 않았으나 같은 기간 완전자본잠식이나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상장폐지된 기업(합병·자진 상장폐지 제외)이 140개인 점을 고려하면 손실 가능성은 더 컸다.

그래픽=손민균

시장별로 보면 코스피 상장사 779개 가운데 363개사(46.6%)의 시가총액이 지난 10년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총액 감소율 1위는 TBH글로벌(084870)이었다. 캐주얼 의류 브랜드 베이직하우스로 알려진 곳이다. TBH글로벌의 시가총액은 10년 전 5235억원에서 현재 278억원으로 95% 줄었다. 일본 유니클로 등의 진출과 함께 국내 제조 직매형 의류(SPA)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고, 중국 시장에서도 2016년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한한령으로 부침을 겪었다. 주가도 우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KC그린홀딩스(009440)가 시가총액 감소율 2위였다. 2014년 9월 2037억원이었던 시가총액이 현재 211억원으로 열토막났다. KC그린홀딩스와 자회사 KC코트렐(119650)은 환경 엔지니어링 사업을 해왔으나, 경영난이 이어졌다. 2022년 발행한 전환사채(CB)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서 채무 문제가 불거졌고, 이달 들어 공동관리절차(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한한령으로 타격을 받은 롯데하이마트(071840)(시가총액 감소율 -89.3%)와 롯데쇼핑(023530)(-82.5%),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물적분할한 HL홀딩스(060980)(-85.6%), 오리온홀딩스(001800)(-81.7%)도 각각 80% 넘게 시가총액이 줄었다.

시가총액 금액 자체가 가장 많이 감소한 곳은 한국전력(015760)이다. 한국전력 시가총액은 10년 새 27조3477억원에서 13조8664억원으로 13조원가량 줄었다. 한국전력 주가는 2016년 5월 정점을 찍은 뒤 국제 유가 상승과 문재인 정부의 전력 정책에 따른 경영난 등 영향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이어 최근 10년간 시가총액 감소 폭은 ▲롯데쇼핑(-8조3950억원) ▲LG디스플레이(034220)(-7조4101억원) ▲현대모비스(012330)(-6조8091억원) ▲아모레G(002790)(-6조4913억원) 순으로 컸다.

그래픽=손민균

코스닥시장도 지난 10일 종가와 2014년 9월 11일 종가를 비교할 수 있는 869개 종목 가운데 357개사(41.1%)의 시가총액이 줄었다. 시가총액 감소율 기준으로 보면 내츄럴엔도텍(168330)(-94.3%)이 가장 부진했고, 대산F&B(065150)씨엑스아이(900120) 등도 90% 넘게 쪼그라들었다.

시가총액 액수를 기준으로 보면 서울반도체(046890)가 가장 많이 줄었다. 광(光) 반도체 기업인 서울반도체 시가총액은 2014년 9월 1조7223억원이었으나, 현재 5183억원으로 1조2000억원 넘게 감소했다. 주력인 발광다이오드(LED)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실적이 부진했던 여파로 풀이된다.

국내 주식시장이 부진하자,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중심으로 가치 제고를 독려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중으로 우수 기업 주식을 담은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고, 연내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할 예정이다. 다만 이런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증권사 대표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자본시장 변화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는 있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의 원인이 소극적 주주환원만은 아니어서 효과가 클지 미지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 경쟁력부터 미국 빅테크에 뒤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상법, 세법 개정부터 인프라 지원 등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물론 국내 증시에서 크게 성장한 기업도 있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지난 10년간 시가총액 증가율이 가장 큰 기업은 현재 코스닥 시총 3위인 HLB(028300)였다. HLB 시가총액은 2014년 9월 1230억원에서 이달 11조2000억원으로 90배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계열사 HLB생명과학(067630) 역시 시가총액이 9조6700억원으로 약 85배 뛰었다.

HLB는 간암 1차 치료제로 개발한 리보세라닙(제품명 툴베지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속에 지난해 12월부터 주가가 급등했다. 리보세라닙 FDA 승인이 한 차례 불발되면서 HLB는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이달 들어 재심사 절차에 들어갔다.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할 것 없이 이차전지 업종 기업의 몸집도 크게 불어났다. 지난해 최고조에 달했던 열풍이 식으며 주가가 꺾였으나 10년간 시가총액 증가율로 보면 에코프로(086520) 85.2배, 금양(001570) 50.5배, 코스모신소재(005070) 48.4배, 엘앤에프(066970) 27.4배 순으로 높아졌다. 한미반도체(042700)삼양식품(003230), 브이티(018290) 등도 실적 개선을 기반으로 시가총액 몸집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