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그룹 계열사 에코프로에이치엔(383310)은 4일 장 마감 후 2000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 결정을 발표했다. 이차전지 소재와 온실가스 저감 촉매제, 반도체 신소재 등과 관련한 시설투자에 조달 자금의 85%(1700억원)를 집행하기로 했다. 신주 예정 발행가는 3만5300원으로 정했다. 다음 날인 5일 에코프로에이치엔 주가는 14.13% 급락한 3만9200원으로 마감했다. 이 회사 주가가 3만원대로 내려간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에코프로에이치엔뿐만 아니라 유상증자 결정을 발표한 종목은 대부분 주가가 급락한다.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을 확장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주식 수가 늘어 가치가 희석되는 것은 당장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한가에서 매수해 반등에 베팅하는 이른바 ‘하한가 따라잡기’처럼, 유상증자 발표 직후 주가가 내렸을 때를 저가 매수 기회로 잡고 들어가면 어떨까.

그래픽=손민균

7일 조선비즈가 최근 1년(2023년 9월~2024년 9월 1일)간 주주 배정 또는 주주 배정 후 일반 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한 64개 상장사(모집액 10억원 미만 소액 공모 제외)의 주가 흐름을 분석한 결과, 두 종목을 제외한 62개 종목이 유상증자 공시 이튿날 하락했다. 주가 하락률은 평균 15.2%였다. 발행 주식 수가 늘어 가치가 희석되고, 할인된 가격의 신주가 시장에 풀리면 주가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주 발행가가 확정되기까지 주가가 오른 경우는 절반에 못 미친다. 유상증자 발표 이튿날 종가보다 신주 발행가 확정일의 종가가 더 높은 경우는 40% 수준으로 집계됐다. 승률이 40%에 그친다는 얘기다.

기업 입장에선 유상증자 진행 과정에서 주가가 예정 발행가보다 떨어지면 곤란하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일반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는 신주 발행가액을 확정할 때 주가 추이(가중산술평균 등)를 반영한다. 주가가 하락하면 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규모도 줄어든다. 이 때문에 유상증자에 돌입한 기업이 신사업 관련 홍보 자료를 발표하거나, 기업 설명(IR) 활동을 늘리며 주가 부양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유상증자 발표 뒤 주가가 많이 빠졌다고 판단해 투자를 하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HLB생명과학(067630)이 대표적이다. HLB생명과학은 지난 3월 21일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주가(수정주가 기준)는 유상증자 발표 이튿날 1만9421원으로 6% 하락했다. 이후 내림세를 이어갔고, 신주 발행가 확정일인 6월 11일 8860원까지 밀렸다. 유상증자 발표로 하락한 이후 신주 발행가가 확정되기까지 54%가량 더 내린 것이다. HLB생명과학이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도 예정 모집액(1500억원)의 절반인 732억원에 그쳤다.

신주 청약 시기까지 넓히면 하락 확률이 더 높았다. 분석 대상 기업 중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하고 이튿날 종가보다 청약 종료일의 종가가 더 높은 경우는 33%(21개)에 그쳤다. 신주 상장일까지를 기준으로 잡아도 34%(22개) 수준이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 후 주가가 폭락했을 때 매수하는 전략은 사실 증권가에서는 흔히 쓰이는 투자법”이라면서도 “유상증자는 회사가 돈이 부족해 주주에게 손을 벌리는 것인데, 유상증자 성공을 위해 주가를 부양할 여력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