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왜 PBR이 1배도 안 되는 건지 설명해 주세요.”(일본제철 소액주주 B씨)

올해 6월 열린 일본 상장사들의 주주 총회는 ‘PBR총회’나 다름없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란, 주가를 장부 가치로 나눈 것이다. PBR 1배 미만이면 회사가 보유 자산을 전부 매각하고 사업을 접을 때보다도 현재 주가가 싸다는 의미다. 저평가 종목을 보유한 일본 소액 주주들은 “PBR 1배 목표를 왜 달성하지 못했느냐”고 항의했고, 경영진은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올해 일본 주주총회 풍경은 내년에 열릴 한국 상장사들의 주총 미리보기판”이라며 “한국도 밸류업(기업가치개선)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하면 내년 주총장에서 PBR 개선 관련 주주 질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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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개선 밝힌 日 상장사 주가 호조

‘PBR 1배’는 올해 일본 증시를 역대 최대 강세장으로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PBR 1배 미만 회사는 주식 열등생’이라고 알리면서 ‘PBR을 1배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을 공시하라’고 각 상장사에 요청했다. 당시 일본 증시는 500개 주요 상장사 중 PBR 1배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43%에 달할 정도로 저평가가 심각했다.

저PBR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한 기업의 주가는 상승세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3월기 결산 보고서에서 낮은 PBR 개선 의지를 언급한 상장사는 모두 44곳이었다. 1년 후 이들 기업 43곳(자진 상장폐지한 1사 제외)의 주가는 29%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일본 대표지수인 닛케이평균의 상승률을 11%포인트 웃돌았다.

✅10대 그룹 대상 첫 밸류업 간담회

일본을 벤치마킹한 한국판 밸류업 프로그램은 연말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9월에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나오고, 이후 펀드 등 연계 상품도 출시될 예정이다. 밸류업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여부도 연말엔 윤곽이 잡힌다.

지난 22일엔 한국거래소 주최로 ‘기업 밸류업을 위한 10대 그룹 간담회’도 열렸다. 밸류업과 관련해 거래소와 10대 그룹 재무 담당 임원들이 간담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10대 그룹 중 불참한 현대차를 제외하고 삼성, SK, LG, 포스코, 롯데, 한화, GS, HD현대, 신세계 소속 임원들이 모두 참석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 증시의 든든한 버팀목인 10대 그룹부터 밸류업 프로그램에 선도적으로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간담회 참석 임원들은 “그룹 차원에서 주주·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10대 그룹 중 PBR 1배 이상은 3곳

밸류업 참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한국의 10대 그룹의 주가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사업보고서 기준 PBR 1배 이상인 그룹(소속 상장사 전체)은 10대 그룹 중에서 HD현대, 삼성, LG 등 3곳에 불과했다. PBR이 0.5배에도 미치지 못한 초저평가 3인방 그룹은 GS, 롯데, 신세계 등 3곳이었다. 신세계그룹은 광주신세계, 신세계, 신세계I&C, 신세계건설,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푸드, 이마트 등 7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모조리 PBR 1배 미만이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대다수 기업의 PBR이 1배 미만이고 심지어 시장 평균(작년 말 0.96배)보다도 낮다”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보다 높은 곳이 현대차그룹밖에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밸류업이 꼭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ROE가 낮다는 것은 보유하고 있는 자본은 많으면서 이익 창출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