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이 기사는 2024년 8월 20일 15시 53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한 예비 상장기업이 코스닥 시장 최초로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을 승인받았다가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지만, 기업공개(IPO)를 주관한 한국투자증권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전망이다. 제재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서다. 다만 IPO 시장에서의 평판 저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일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노그리드 건과 관련해 주관사 제재는 없다”고 밝혔다.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인 이노그리드는 올해 1월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해 본심사만 남겨두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 최대주주가 한국거래소에 현 경영진과의 경영권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내용 증명을 보냈고, 이에 한국거래소는 예비심사 승인이 적절했는지 검토에 나섰다가 결국 이노그리드의 상장 승인을 취소했다.

이노그리드는 기관과 일반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거쳐 올해 7월쯤 상장할 예정이었다. 다만 이노그리드는 상장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금감원이 7번이나 증권신고서 정정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이어 한국거래소가 중요 사항을 증권신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면서 이노그리드는 최소 1년간 상장을 추진할 수 없게 됐다.

상장 예비심사에서 승인을 받았다가 취소된 사례는 이노그리드가 최초라 주관사 책임론도 부상하고 있다.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이노그리드에 대한 실사를 철저히 해 전 최대주주와 현 최대주주의 경영 분쟁을 파악했어야 한다는 뜻에서다. 경영권·최대주주 지위 분쟁 관련 사항은 상장 심사의 핵심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거래소는 주관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계획이다. 한국거래소가 상장 과정에서 주관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기술특례상장에 한해서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지 3년 안에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주관사는 해당 기업이 상장한 날로부터 3년간 기술특례‘성장성’ 트랙을 주관할 수 없다.

기술특례상장이 뛰어난 기술을 가졌지만 당장 수익성을 내지 못해 특별히 완화된 재무 성과를 적용해 상장하는 제도라 주관사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기술특례’성장성’이란 주관사가 기업의 성장성을 직접 평가하는 방법이라 페널티가 있다. 최근 사이버 보안 기업 시큐레터가 외부감사인으로부터 사업보고서 ‘의견 거절’을 받으면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자 대표 주관사인 대신증권이 2026년까지 성장성 추천 트랙의 상장 주선 자격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이노그리드 역시 기술특례상장이긴 하지만, 상장도 하기 전에 취소된 것이기 때문에 시큐레터의 경우와는 다르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거래소로부터 특별한 제재를 받진 않겠지만, IPO에 강한 증권사라는 명성은 흔들릴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이 IPO로 잡음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440110)는 지난해 상장하면서 그해 1203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상장 직후인 2분기 매출액은 5900만원에 불과했다. 3분기 매출도 3억2100만원에 그쳤다.

이에 파두가 긍정적인 매출 전망으로 몸값을 부풀려 상장했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이 회사의 주관사도 한국투자증권이었다.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NH투자증권과 공동 주관했고 두 증권사 모두 금감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바 있다. 현재 금감원은 주관사가 파두의 2분기 매출을 알고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연이은 악재 때문에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 NH투자증권 3파전이 펼쳐지는 IPO 주관 시장에서 한국투자증권의 지위가 약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증권가에 따르면 상반기 한국투자증권의 IPO 주관 금액은 1922억원으로 KB증권에 밀린 2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