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소형주 주가는 금리 인하 기대감에 힘입어 연일 뛰고 있다. 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지수는 한달 새 10% 넘게 상승하며 대형주 중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상승률(1.85%)을 웃돌고 있다. 차입금 부담이 큰 중·소형주 특성상 금리 인하로 경영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이 이자에 민감한 종목들로 구성된 코스닥지수는 한달 동안 4.5% 하락했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이른바 ‘뻥튀기 상장’도 지수를 갉아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 첫날 과열로 기업가치 대비 비싼 시가총액을 기록했다가, 곧바로 추락하면서 투자자들에게는 손실을 입히고 전체 지수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5년(2019년 7월~현재)간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한 종목은 스팩·상장폐지·우선주 등을 제외하고 354개다. 전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이 상장 첫날 기업가치(공모가 x 최초 상장 주식 수)를 밑도는 기업이 57.1%(202개)였다.

기업가치가 하락한 202곳의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총 42조3258억원이다. 하지만 전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총 23조9328억원이다. 상장 후 시가총액이 상장 첫날과 비교해 18조3930억원 증발했다는 의미다.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상장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과대 평가됐다는 비판이 지속해서 나오는 배경이다.

상장 때보다 시가총액이 가장 많이 줄어든 종목은 이차전지 분리막 제조기업 더블유씨피(393890)다. 더블유씨피는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가 2조원이 넘었으나, 전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9060억원으로 1조1140억원가량 감소했다. 미래 실적을 추정해 기업가치를 책정하는 방식에 구멍이 있었다.

더블유씨피는 2022년 9월 기업공개(IPO) 때 올해까지 상각전영업이익 대비 기업가치(EV/EBITDA)를 기준으로 몸값을 정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더블유씨피가 상장한 2022년 EV/EVITDA는 13.3배였으나, 올해 증권사 추정치는 106.8배다. 주식을 100% 인수하면 투자원금으로 부채를 상환하고 시가총액을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13.3년에서 106.8년으로 늘었다는 의미다.

더블유씨피는 상장할 때 기대한 것과 달리, 연간 영업이익이 2022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부침을 겪고 있다. IPO 전보다 시가총액이 5970억원 줄어든 파두(440110)나, 5800억원 감소한 네오이뮨텍(950220) 역시 장밋빛 전망에 기댄 미래 추정 실적과 달리 부진한 영업 성과를 내면서 기업가치가 쪼그라들었다.

기업가치 과대평가를 걸러내야 할 기관 투자자의 수요예측도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더 많은 공모주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적정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는 일이 비일비재해서다.

지난 15일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엑셀세라퓨틱스(373110)가 대표적이다. 엑셀세라퓨틱스는 공모가 희망 범위(밴드)를 6200~7700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투자자 99.9%(미제시 포함)가 밴드 상단을 초과하는 가격을 써냈다. 수요예측이 흥행하면서 엑셀세라퓨라틱스는 최종 공모가로 1만원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상장 첫날부터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고, 상장 후 4거래일 만인 전날 공모가 대비 22.3%(2230원) 내린 7770원까지 밀렸다.

금융당국 등도 문제 해결을 위해 대책을 꺼내 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뻥튀기 상장을 방지하기 위해 IPO 과정에서 기업 실사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선 방안을 지난 5월 발표했다. 금융투자협회도 공모가와 관련한 예시안을 마련해 지난달 업계에 전달했다. 예시안에는 미래 실적 추정치나 비교 기업 선정과 관련해 주의할 사항이 담겼다.

다만 상장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부실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활동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 문턱만 높이면 미래 가치가 뛰어난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기회만 상실할 수 있다”며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등이 추진하는 ‘좀비기업’ 퇴출도 더 적극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