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 없어서 못 파는 상품이었던 해외 부동산 펀드가 골칫덩이가 돼 돌아왔다. 한때는 펀드를 사려면 판매사 프라이빗뱅커(PB)에게 예약을 걸어놔야 했지만,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확산으로 공실률이 증가하면서 펀드 수익률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출시된 대부분 펀드가 환헤지(hedge)형이라는 점이 또 다른 뇌관이 될 조짐이다. 환헤지란 외국 돈과 우리 돈의 교환 비율을 미리 확정하는 계약을 맺는 것을 말한다. 당시 환헤지형이 많았다는 사실이 지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유로화가 올랐지만 펀드 수익률 개선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디폴트다. 환헤지 때문에 디폴트가 나는 펀드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헤지 계약이 만기를 맞으면 펀드는 헤지 은행에 자금을 유로로 줘야 하는데, 공실로 부동산 가격이 내린 탓에 건물을 팔아도 헤지 은행에 줘야 할 돈보다 부족한 이유에서다.

그래픽=정서희

24일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럽 부동산에 투자하는 국내 공모펀드는 18개로, 이 중 16개가 환헤지형이다. 환노출형인 공모펀드 2개는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ClassA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ClassC-I이다.

두 펀드 또한 원래는 환헤지형이었으나, 기초자산의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환노출형으로 전환됐다. 이 펀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한 상품인데, 재택근무 확산으로 오피스 빌딩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기초자산의 가치가 하락했다.

펀드의 기초자산 가격이 최초 가격보다 50% 이하로 떨어지면서 환헤지 은행(스왑 뱅크)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해당 펀드들과 환헤지 계약을 조기 종료했다. 이 탓에 두 펀드만 환노출형 공모펀드가 됐다. 두 펀드의 설정 이후 수익률은 ClassA의 경우 마이너스(-) 81.45%, ClassC-I은 –81.19%다. 건물을 매입할 때 매입금액의 55~60%를 대출로 조달해 건물 가격 하락 폭보다 펀드 손실이 더 크다.

높은 공실률은 다른 오피스 빌딩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과 미국은 코로나19로 시작된 재택근무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굳이 대면이 아니어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특히 유럽은 아직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분위기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업체인 코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영국 런던 오피스의 공실률은 9%로 2003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환헤지형 펀드는 환율이 오르고 내려도 환율을 고정해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을 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환차익(환율 변동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특히 최근처럼 유로화가 오르는 시기에 환헤지형 펀드는 기초자산 가격에 하락분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환헤지형으로 해외 부동산 펀드를 조성한 이유는 당시 환헤지 프리미엄이 컸기 때문이다. 환헤지 프리미엄이란 환을 헤지할 때 양국 간 금리 차이로 얻는 이익이다. 상대 국가보다 금리가 높은 국가에서 발생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제가 위축되자 꾸준히 금리를 낮춰 시장에 돈을 풀어왔다. 2016년 3월엔 기준금리를 0.0%까지 내렸다. 당시 한국의 기준금리는 1.5%여서 유로와 환헤지를 하면 이론상 환헤지 프리미엄 1.5%가 났던 시기다. 펀드를 만드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환헤지를 안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문제는 환헤지 펀드의 캐피털 콜(추가 출자) 발생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펀드를 조성할 때 펀드가 헤지 은행과 100% 헤지 계약(1유로=1000원)을 체결하고 1000유로짜리 건물을 샀다고 해보자. 헤지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펀드는 헤지 은행에 1000유로를 주고 100만원을 받아야 한다.

이후 부동산 경기 악화로 투자한 건물이 만기 때 600유로로 떨어졌다면, 펀드는 헤지 은행에 600유로밖에 줄 수 없다. 나머지 400유로는 받아야 할 40만원과 상계한다. 하지만 헤지 계약 만기 때 1유로가 1300원으로 올랐다면 상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헤지 은행이 환율 상승에 따른 추가 정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400유로를 구하려면 52만원이 필요해 이론적으로 펀드는 헤지 은행에 12만원(52만-40만원)을 더 줘야 한다. 이때 펀드는 헤지 은행에 갚기 위해 투자자에게 추가 출자를 요구하는데, 합의는 쉽지 않다. 공모펀드는 투자자 전원이 합의해야 추가 출자를 할 수 있는데, 펀드로 손실을 본 상황에서 선뜻 모든 투자자가 돈을 내놓기란 희박한 이유에서다.

이는 현지 대출이 없을 때의 가정이다. 현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다면 빌딩 가격이 하락한 것보다 펀드의 수익률은 더 크게 깨진다. 대부분의 해외 부동산 펀드는 현지에서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한다. 펀드의 수익률이 바닥인 상황에서 헤지 은행에 추가 금액을 납부해 건질 돈이 많지 않은 것이다. 최악의 경우 펀드는 디폴트까지 이어질 수 있다.

펀드 운용사는 헤지 만기일에 돌려줄 금액을 맞추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산을 공정가치로 평가한다. 이 가치를 기준으로 환헤지를 덜 하기도, 더 하기도 한다. 매일 가격이 정해지는 주식은 시장가치로 평가하면 되지만, 거래가 체결돼야 가치가 확정되는 부동산은 공정가치 평가가 더 까다롭다. 부동산 펀드의 디폴트 가능성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식은 거래가 원활해 미스매칭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며 “부동산은 한 번 건물을 사면 몇 년간은 가지고 있어야 해 극단적일 경우 캐피털 콜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펀드가 자주 만기 연장되면서 펀드 만기 전 환헤지 거래가 먼저 만료되는 것 역시 문제다. 연장 또는 신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환헤지 거래 만기일 환율이 환헤지 환율보다 높으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당장 다음 달 15일 한국투자밀리노부동산투자신탁1호는 환헤지 거래가 만기 되는데 해외 부동산 시장 침체로 환헤지 은행들이 헤지 거래를 기피하고 있어 환노출 펀드로 전환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