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이 예고된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판매사인 은행 작심 비판에 나섰다. 최근 ELS 판매 은행들은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피해 예방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솔직히 말해 은행이 면피 조치를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뉴스1

29일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은행에서 (금감원이) 묻기도 전에 ELS와 관련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며 “저희에겐 (은행의 말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취했다기보단 본인들 면피 조치를 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ELF(펀드)·ELT(신탁) 중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는 8조4100억원이다. 투자자들은 은행이 해당 상품의 투자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 중이다.

이날 이 원장은 “적합성의 원칙,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상품 판매 절차 규제 본질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은행처럼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원장은 “소비자가 충분히 상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게 적합성 원칙의 본질적인 내용”이라며 “고위험 고난도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도 적합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노후 보장 목적으로 만기가 다 된 정기예금을 재투자하고 싶어 하는 70대의 투자자가 있다면, 설명 여부를 떠나 이런 분께 수십 퍼센트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을 은행이 권유하는 게 적정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ELS 상품 구조를 노령의 소비자나 금융 투자 경험이 없는 이에게 짧은 시간 내에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ELS를 일반 투자자에게 권유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이 원장의 판단이다. 이 원장은 “H지수는 2016년 몇 개월 사이에 43% 넘게 폭락한 전례가 있는 기초 지수”라며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창구에 노후 자금을 맡기러 온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한 건 의문”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내년 이후에 검사하는 게 통상적으로는 맞으나 특정 은행의 판매 쏠림 현상이 지나쳐 사실관계를 빨리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현재 금감원은 홍콩H지수 관련 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를 중심으로 현황 파악 중이다.

일부 은행에서 ELS 판매 한도를 지켰다는 주장에 대해 이 원장은 “증권사는 한도가 없다”며 “수십 개 증권사에서 판매된 걸 다 합쳐도 한 은행에서 판 것만 못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증권사라고 그 상품을 안 팔고 싶어서 안 팔았겠냐”며 “은행은 지금처럼 소비자 피해 조치를 완료했다는 언행을 쉽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를 선량한 피해자로 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이 원장은 “경우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 원장은 “다소 원금 손실이 나도 고객이 자산을 크게 불려달라고 요청했다면 적합성의 원칙에 따라 ELS를 추천한 것이겠지만 노후 자금을 써야 하는 고객에게 추천했다면 그건 경우가 다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