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반도체 설계 기업 파두(440110)가 실적을 감추고 기업가치를 뻥튀기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후, 같은 방식으로 상장하려던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재 연매출 10억원대에 영업적자 상태인 기업 다수가 한국거래소에 기술특례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파두 사태’로 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더 까다로워질 것이란 전망에 이들 기업은 울상을 짓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예심)를 청구한 기업 중 2022년 연 매출액이 10억원대인 기업은 총 3곳이다. 디지털 헬스기업 씨어스테크놀로지(11억5300만원), 생체현미경 개발사 아이빔테크놀로지(13억3800만원), 바이오 기업 엑셀세라퓨틱스(10억2000만원)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10억원대 초반에 불과했다.

세 기업 모두 올해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 통과하고 거래소 문을 두드렸다. 기술성 평가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첫 관문이다. 기업이 외부 평가 기관으로부터 기술력과 사업성에 대해 일정 등급(A, BBB) 이상을 받으면, 지금까지 실적이 저조하더라도 상장 예심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당장의 실적보다는 미래 성장성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 기업의 연간 실적은 지난해까지 2년간 더 나빠졌다. 씨어스테크놀로지 매출액은 2021년 13억3800만원에서 2022년 11억5200만원으로 줄었다. 이 기간 영업손실은 44억원에서 8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씨어스테크놀로지는 웨어러블 의료기기·원격진료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아이빔테크놀로지는 생체 내부 장기 세포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생체현미경을 개발한다. 최근 2년간 이 회사의 실적도 더 악화됐다. 아이빔테크놀로지는 2021년 매출 5억2697만원, 영업손실 26억7755만원을 기록했다. 2022년 매출은 13억원대로 늘었으나, 영업손실도 33억3067만원으로 커졌다. 아이빔테크놀로지의 올해 매출액 목표는 52억원으로, 지난해의 4배 수준이다.

엑셀세라퓨틱스 매출은 2021년 약 20억원에서 2022년 1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56억7801억원에서 82억9144만원으로 46% 넘게 늘었다. 엑셀세라퓨틱스는 세포·유전자 치료제 전용 배양배지를 생산하는 바이오 기업으로, 지난달 말 예심을 청구했다.

지난 7월 한국거래소가 경기 판교에서 '찾아가는 기술특례상장 로드쇼'를 개최했다./한국거래소 제공

증권가에서는 기술특례제도를 활용한 상장이 당분간 더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다고 본다. 가뜩이나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이 각종 논란에 휘말리며 거래소 심사가 까다로워진 상황에서, 조 단위 몸값을 인정받으며 기업공개(IPO) 대어로 꼽혔던 파두가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부실 우려에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앞서 기술특례상장 기업인 신라젠(215600)은 주가조작 논란에 휘말리며 약 2년 반동안 거래가 정지됐다. 셀리버리(268600)는 적자가 계속되며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국내 한 증권사의 IPO 업무 담당자는 “파두 사태 이후로 거래소와 금융당국이 더욱 깐깐해질 것이 명백해졌다”면서 “기업은 피어 그룹(기업 가치 비교를 위한 기업) 선정 이유나 실적 추정 적절성과 관련해 아주 상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업계에선 ‘거래소가 기술특례기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돈다”며 거래소가 실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기업도 아주 까다롭게 심사했다고 했다. 그는 “파두 사태로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기술특례상장을 노리는 기업에 아주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파두는 올해 첫 조 단위 공모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달 8일 공개한 2분기 매출이 5900만 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9일 주가는 하한가로 고꾸라졌다. 파두 주가는 17일 1만7920원까지 내려갔다가 20일 10%가량 반등해 1만9770원으로 마감했다. 파두 시가총액은 상장 후 한때 2조원이 넘었으나, 현재 9600억원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파두는 3월 상장 예심 신청서를 내고 6월 말 증권신고서를 처음 제출했다. 이어 7월 26일 증권 발행 조건을 확정한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2분기 실적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상장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파두는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진행됐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주관사(NH투자증권)와 파두를 대상으로 심사 당시 실적을 제대로 제출했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거래소도 파두 사태 이후 상장 규정과 시행 세칙을 개정해 상장 주관사의 책임성을 강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