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올해 안에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증권가에서는 일부 최대주주가 제도 도입 전에 기업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최대주주가 기업을 매각하거나, 당장 매각이 어려워 매각 시기가 제도 도입 이후로 예상된다면 제도 도입 전에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공개매수를 진행해 지분율을 높이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의무공개매수 제도는 상장사를 인수합병(M&A)할 때 25% 이상 지분을 사들이는 최대주주가 소액주주의 지분도 ‘50%+1주’까지 공개매수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기존 최대주주의 지분이 25%라면 최대주주에게 지급하기로 한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나머지 25%+1주까지 소액주주들의 지분도 사야만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25~50% 사이에 있는 상장사가 기업을 매각할 때 소액주주와 경영권 프리미엄을 나눠 갖도록 한 것이 제도의 핵심이다. 지난달 29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위원회의 정책을 반영해 이 제도를 도입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최대주주가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기업을 매각하거나 지분율을 50%+1주 이상으로 높이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소액주주들과 나눌 필요가 없어지기에 사전에 이런 작업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구체적으로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25%에서 50%에 못 미치는 휴젤(145020), 하나투어(039130) 등이 대상 기업으로 언급된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 / 연합뉴스

8일 금융감독원과 오르비스투자자문에 따르면 현재 최대주주가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전 기업을 매각하거나,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장사는 휴젤, 하나투어, 한국항공우주(047810)(KAI), HMM(011200) 등 4개사다.

양근모 오르비스 투자자문 대표는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M&A(매각)를 서두르려는 움직임이 예상된다”라며 “혹은 매각 시기가 법 시행 이후로 예상되면 사전에 50%+1주까지 공개매수를 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극대화하려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지분을 추가 매수해서 기업을 매각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하는 일종의 대비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말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최대주주가 자금력이 있으면 제도 변경 전에 공개매수로 지분율을 50% 넘게 높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공개매수를 선제적으로 활용해 정부의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 중 일부는 사모펀드(PEF)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이다. 대표적인 곳은 주름 치료제로 쓰이는 보툴리눔 톡신(일명 보톡스) 제제 생산기업 휴젤이다. 국내‧외 사모펀드와 GS(078930)그룹이 공동 출자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인데 지분율이 의무공개매수 대상 범위(25~50%+1주)에 있다. 휴젤의 최대주주인 아프로디테 애퀴지션 홀딩스(Aphrodite Acquisition Holdings LLC)는 현재 43.2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프로디테 애퀴지션 홀딩스는 싱가포르와 중동 펀드, 국내 사모펀드인 IMM 인베스트먼트, GS그룹이 공동으로 지분을 보유한 곳이다.

IMM PE의 하모니아1호 유한회사와 특수관계인이 27.78%의 지분을 보유한 하나투어도 제도 도입 전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일 주가는 5만4400원으로 거래를 마쳤는데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6월 7일 기록했던 52주 신고가(7만6300원)보다 28.7%(2만1900원) 낮은 수준이다.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곳들도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피해야 할 처지가 됐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지분율 26.41%)로 있는 한국항공우주(KAI), 한국산업은행이 최대주주(지분율 20.69%)인 HMM 등이다.

그래픽=정서희

다만 KAI나 HMM 등 국책은행이 최대주주인 상장사는 의무공개매수 제도에 포함하지 않는 특혜를 제공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지분을 보유했는데 예외를 두지 않으면 의무공개매수제도 때문에 국책은행이 자금을 더 투입해 지분율을 50%+1주까지 높이거나 소액주주와 경영권 프리미엄을 나눠서 정책자금 회수 규모가 줄어들 수 있는 난감한 상황이어서다. 정부가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며 제도를 변경하면서 국책은행이 쏟아부은 정책자금 회수의 손발이 묶이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아직 법 통과 이전이기에 국책은행 소유의 기업을 예외 조항으로 둘지는 확정되지 않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