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묻지마’ 급등락을 지속했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들의 주가가 이달 들어 다시 급등하고 있다. 증권 업계 전문가들은 합병 대상의 결정 등 특별한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스팩 투자에 뛰어들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며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지난 5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한화플러스제2호스팩은 증시 입성 직후 공모가 2000원보다 2배 높은 400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9일 장 중 한때 7140원까지 올랐다. 상장한 지 2거래일 만에 공모가의 3배보다 높은 가격을 기록한 것이다.

6월 17일 상장한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4거래일 만에 1만2450원까지 급등했다. 공모가와 비교해 6배 이상 오른 것이다. 5월 중 상장한 삼성스팩4호는 상장 이튿날부터 6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1만원 넘는 가격까지 올랐는데, 현재는 어느 정도 주가가 하락한 상태임에도 7000원대의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상장한 한화에스비아이스팩도 지난달 말부터 갑자기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달 5일에는 장 중 한때 8090원까지 급등하며 공모가 대비 4배 높은 주가를 형성하기도 했다.

스팩은 비상장사의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다. 증권사에서 설립하고 투자금을 공모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다. 이후 우량 기업을 발굴해 흡수합병하면, 해당 기업은 스팩을 통해 주식시장에 우회 상장하는 효과를 얻는다. 기존 스팩 주주들은 합병법인의 주식을 갖게 되는데, 주식 수는 합병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스팩은 상장한 후 3년 안에 합병 대상 법인을 찾지 못하면 해산하게 된다. 이 경우, 스팩 주주는 투자 원금(공모가 2000원 기준)과 이자를 지급받게 된다. 이때 이자는 신탁 예치율에 따라 달라진다.

증시 전문가들은 스팩의 주가가 높을수록 합병 대상 법인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즉, 우회상장을 하지 못하고 청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는 “스팩은 대략 주당 2000~2100원의 가치로 다른 법인과 합병하는데, 스팩의 가치가 높을수록 합병 대상 법인의 합병비율이 낮아져 해당 기업 주주들이 불리해진다”고 설명했다.

만약 스팩 주가가 2000원이고 합병 대상 법인 A사의 주가가 2000원이라면,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은 1대1이 된다. 즉, 합병 신주가 상장하는 날 A사 주식 1주당 스팩주 1주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스팩의 주가가 4000원이라면, A사와의 합병 비율은 2대1이 된다. 이 경우 A사의 기존 주주들은 주식 1주당 스팩주 0.5주를 배정 받게 된다. A사 입장에서는 해당 스팩과 합병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스팩의 주가가 지나치게 높다면 스팩 발기 증권사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해당 스팩이 합병 대상으로서 가지는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증권사에서는 스팩의 합병가액을 결정할 때 합병 결정일 이전의 평균 주가에 일정 수준의 할인율을 적용한다. 할인율은 30% 이내에서 결정되며, 할인율이 높을수록 스팩 주가는 하락하고 합병 대상 법인이 유리해진다.

만약 스팩에 30%의 높은 할인율이 적용된다면, 스팩 주주들은 손실을 피하기 위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합병에 반대하는 스팩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정당한 가격에 매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기존 스팩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회사로 유입되는 금액이 줄어들면, 합병 대상 법인은 또 다시 해당 스팩과의 합병을 피할 것”이라며 “이 경우 해당 스팩이 흡수합병에 실패하고 청산될 위험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스팩은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회사인 만큼, 주가는 오직 우량 기업과의 합병 소식에 의해서만 올라야 한다”며 “최근 스팩주들이 급등하는 것은 ‘묻지마 투자’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일부 스팩주가 이상 급등 현상을 보이고 있어 스팩주 20여개를 대상으로 기획 감시를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