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고려아연

이 기사는 2024년 9월 13일 11시 3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뛰어든 가운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어떤 반격 카드를 내놓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미 LG·한화·한국타이어 등의 백기사를 등에 업은 최 회장이 또 다른 백기사를 찾아 우호 지분을 늘리는 것이 현재로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최 회장이 자기 명의나 계열사 명의로 대항 공개매수를 하거나 지분을 매집하는 건 법적으로 어렵다. 공개매수가 진행되는 동안은 매수 주체의 특별관계자가 별도의 공개매수나 다른 방식으로 주식을 살 수 없게 돼 있어서다. 영풍 측과 주식을 공동 보유한 게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면 특별관계자로서의 지위에서 벗어나 공개매수를 따로 추진할 수 있지만, 현재 최 회장과 영풍은 계열사로 엮여 있는 특수관계인이라서 계열 분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전날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 및 특수관계인과 주주 간 계약을 맺고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되, 주도권은 MBK파트너스가 가져가는 구조다. MBK파트너스는 영풍 및 특수관계인 소유 지분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콜옵션을 행사하면 MBK파트너스가 영풍 측보다 고려아연을 단 1주 더 많이 갖게 된다.

MBK파트너스는 13일부터 오는 10월 4일까지 영풍과 함께 공개매수도 실시한다. 단가는 66만원으로, 전날 종가인 55만6000원보다 18.7% 높다. 최소 144만5036주(6.98%)에서 최대 302만4881주(14.61%)까지 공개매수한다는 계획이다. 14.61%의 지분을 확보한다면 영풍과 MBK 측 지분은 총 47.7%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등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지분율은 52%에 육박하게 된다.

최윤범 회장 등 최씨 일가의 지분은 33.2~33.9%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씨 일가가 15.9%, 백기사가 17.3%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를 교환한 LG화학·한화와 한국타이어, 조선내화 등이 우호 주주로 분류된다. 작년 9월 5272억원을 투자해 신주를 인수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HMG글로벌도 백기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

현재 고려아연의 실질적 유통 물량은 22.92% 수준이다. 최씨·장씨 일가와 우호 주주들, 그리고 국민연금 지분(7.57%)과 자사주(2.39%)를 제외한 물량이다. 메리츠증권 분석에 따르면, 영풍 측 지분율이 과반이 되는 걸 막으려면 최 회장 측은 22.92% 중 6.05% 이상을 추가로 취득해야 한다. 금액으로는 약 6965억원에 달한다. 반대로 영풍이 고려아연의 지분율 과반을 막기 위해선 6.9%(7943억원)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이는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최소 목표치이기도 하다.

‘큰 손’ 국민연금이 어느 한 쪽 편에 서지 않는 한, 양측은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려면 유통 물량 22.92%를 노릴 수밖에 없다. 최 회장이나 고려아연 계열사가 나서서 공개매수 등의 방식으로 지분을 매집하는 건 현재로서 불가능하다. 자본시장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40조는 “공개매수자 및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공고일부터 종료일까지 공개매수에 의하지 않고는 그 주식을 매수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별도 매수 금지 의무’라고 한다. 특별관계자는 별도의 공개매수는 물론이고 다른 방법을 통한 매수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공개매수 단가와 별도 매수 단가의 차이로 인해 주주 간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시세 조종이나 내부자 거래를 방지하는 게 목적이다.

고려아연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최대주주는 영풍이며, 최 회장 등 최씨 일가는 ‘출자자’라는 이름으로 대주주 특수관계인으로 묶여있다. 때문에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이 공개매수를 실시하는 동안 최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를 하거나 그 외의 방법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게 자본시장법상 불가능하다.

만약 최 회장이 단순히 주식의 공동 취득·처분이나 의결권 공동 행사 등을 합의한 ‘공동보유자’라면, 자신이 더 이상 영풍과 공동보유자 관계가 아님을 증명하고 특별관계자 지위에서 벗어나면 된다.

그러나 최 회장은 영풍과 계열사로 엮인 ‘특수관계인’이다.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특수관계인으로서의 관계를 해소하려면 계열 분리밖에는 답이 없다”며 “MBK 측에서도 공개매수 기간 동안 계열 분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역시 2008년 특별관계자에 의한 별도의 새로운 공개매수를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 회장이 백기사를 찾아 우호 지분을 늘리는 방법이 지금으로서 유일한 해답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장벽이 있다. 제3자인 백기사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들여 주식을 사야 하는 만큼 배임 소지가 있어서다. 현재 고려아연 주가가 너무 높아졌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달 초만 해도 40만원대였던 고려아연은 13일 장 중 69만원까지 올랐다.

공개매수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 특정인이나 법인이 주식을 대량 매집할 경우 카카오-SM엔터테인먼트 사태 때와 같은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SM 경영권 인수전에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 등과 공모해 2400억원을 투입, SM 시세를 하이브 공개매수 단가 위로 끌어올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창업주인 김범수 의장이 구속기소된 상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MBK파트너스가 한국앤컴퍼니 주식을 공개매수할 당시, 조양래 명예회장과 hy(옛 한국야쿠르트)가 한국앤컴퍼니 주식을 장내매수했을 때는 MBK를 비롯한 일각에서 공개 매수 방해 행위라고 규탄했으나 별 다른 문제 제기 없이 넘어갔다.

영풍 측은 이날 고려아연 회계장부 열람 등사 가처분을 신청했다고 밝히며 최윤범 회장이 원아시아파트너와의 친분 관계를 토대로 SM 시세조종에 관여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공개매수를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를 우회적으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