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고객의 랩어카운트(랩)·특정금전신탁(신탁) 계좌를 돌려막다가 적발된 증권사 6곳 전체에 일부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 앞서 영업정지가 결정된 KB증권·하나증권까지 포함하면 조사 대상 9곳 중 8곳이 모두 영업정지 중징계 철퇴를 맞은 것이다. 나머지 한 곳인 유안타증권은 아직 제재 통보를 받지 않았으나, 처벌 수위는 비슷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 뉴스1

12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날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어 미래에셋증권(006800),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005940), 교보증권(030610), 유진투자증권(001200), SK증권(001510) 등 국내 증권사 6곳에 대한 랩·신탁 불건전 운용 관련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앞서 금감원 제재심의국은 이들 증권사에 사전통지서를 전달했는데, 6곳 전체에 일부 영업정지를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영업정지 기간은 증권사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이들에 앞서 중징계 통보를 받은 하나증권(영업정지 6개월), KB증권(영업정지 3개월)과 비슷한 수준으로 전해진다.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는 “6개사가 모여 대책을 세우고 금감원에 이의도 제기했으나, KB·하나증권 처분과 형평성을 이유로 당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일부 증권사는 사적화해를 통해 영업정지 기간을 낮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랩·신탁은 증권사가 일대일 계약을 통해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여러 고객 자산을 같은 기초자산에 투자하는 펀드와 달리 랩·신탁은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자금 수요에 따라 개별 운용하는 구조다. 만기는 통상 3~6개월로 길지 않다. 법인 고객이 단기자금을 굴릴 때 종종 랩·신탁을 찾는 이유다.

금감원은 작년 5월 9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에 관한 집중 점검에 착수했다. 검사를 통해 금감원은 증권사들이 특정 고객의 수익률을 보장하고자 다른 고객 계좌로 손실을 돌려막거나 회사 고유자금으로 손실 일부를 보전해 준 사실을 발견했다. 금감원은 약 1년의 검사 기간을 거쳐 올해 6월 말 KB증권과 하나증권에 대한 일부 영업정지 결론을 먼저 발표했다.

기관 제재는 기관주의-기관경고-시정명령-영업정지-등록·인가 취소 등 5단계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기관주의만 경징계에 해당하고, 기관경고부터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두 회사가 중징계 처분을 받은 후 시장에선 “나머지 증권사도 비슷한 수준의 징계를 받을 것”이란 말이 나왔는데, 그 예상이 이번에 들어맞았다. 9개사 중 남은 한 곳인 유안타증권(003470) 측은 “아직 제재 통보를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금감원 제재심이 끝나면 해당 안건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로 올라가 최종 제재 수위를 확정한다. 금융위는 하나증권과 KB증권 안건을 아직 증선위에 올리지 않은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 제재심이 모두 끝나면 그때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