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려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취지에 공감하면서 향후 세부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오면 자금 투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민연금은 미리 정의해 둔 자산군에 목표 비중을 부여하는 경직적인 현 자산 배분 구조에서 벗어나 투자 대상을 다각화하겠다고도 했다.

손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전략실장(왼쪽)이 3월 14일 서울 충정로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열린 설명회에 참석해 기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국민연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14일 서울 충정로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설명회를 열고 지난해 기금 운용 성과와 향후 계획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이석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략부문장은 “기금운용본부는 기금 운용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밸류업 프로그램 방향성에 적극 찬성한다”고 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범정부 밸류업 자문단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 부문장은 “아직 밸류업 정책이 구체적으로 나온 건 아니다”라며 “추후 세부 내용이 나오고 (그 내용이) 국민연금의 방향성과 일치한다면 자본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할 예정인 ‘기준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기준 포트폴리오는 자산군을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으로 단순화한 포트폴리오다.

현재 국민연금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모든 투자 관련 의사결정을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위원장)을 포함해 총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기금위는 매년 전략적 자산배분(SAA)을 실시해 국내 주식, 해외 주식, 국내 채권, 해외 채권, 대체투자 등 미리 정의해 둔 자산군에 각각 5년 동안의 목표 비중, 허용 범위, 벤치마크(비교 지수) 등을 정한다.

문제는 SAA가 자산군 중심의 칸막이(silo) 형태로 이뤄지다 보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또 경직적인 자산 배분 체계가 의사결정 기간을 늘리고 투자 집행을 늦췄을 뿐 아니라 유연한 신규 자산 도입도 방해했다.

기준 포트폴리오는 SAA의 이 같은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꼽힌다. 자산군을 ‘위험’과 ‘안전’으로 단순하게 구분한 덕에 투자 유연성을 제고할 수 있다. 예컨대 SAA 관점에서는 채권이 부동산보다 안전한 자산이다. 그러나 부실국 국채와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부동산을 비교한다면, 부동산이 더 안전한 자산일 수 있다. 기준 포트폴리오를 도입하면 자산군의 표면적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진다.

손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전략실장은 “유연한 투자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한 추가 수익 추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오는 5월 중기자산배분 의결 시 대체투자에 먼저 기준 포트폴리오를 적용하고자 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대체투자의 벤치마크를 주식·채권 등 다른 기회비용 형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손 실장은 “예를 들어 신규 부동산 투자 시 기회비용 모델을 통해 해당 부동산의 위험 특성치가 주식 40%·채권 60%로 판단됐다면, 필요한 투자 금액을 해당 비율(주식 40·채권 60)로 매도해 마련하는 식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위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