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030200)그룹 계열의 전자책 구독 플랫폼 기업 밀리의서재가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기관 수요예측에 재도전한다. 작년 11월 기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중도 포기한 지 약 10개월 만이다.

‘재수생’ 밀리의서재는 이번에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를 내리고 구주 매출을 없애 유통 물량을 과감히 줄였다. 흥행을 위한 필승 전략인 셈이다. 오버행(과잉 매물 출회)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재 기업공개(IPO) 시장 분위기가 당시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며 조심스럽게 흥행 성공을 점치는 분위기다.

밀리의서재 CI.

7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밀리의서재는 이날부터 13일까지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상장 주관은 미래에셋증권이 맡는다. 밴드는 2만원에서 2만3000원 사이다.

밀리의서재는 밴드를 작년 상장 도전 당시의 2만1500원~2만5000원보다 최대 8% 낮췄다. 공모 수량 역시 200만주에서 150만주로 줄였다. 덕분에 최소 430억원으로 예정됐던 공모금 총액도 300억원으로 줄었다.

시장에선 밀리의서재가 잘 쓴 오답노트로 두 번째 수요예측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희망 공모가를 낮춰 접근성을 높인 게 대표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작년 11월 수요예측에서 대다수 기관 투자자들이 밴드 하단보다 낮은 가격을 써냈었다.

구주 매출을 대부분 없애고 신주만 상장하기로 한 것도 밀리의서재가 오답에서 찾아낸 답안이다. 앞선 IPO 과정에서는 전체 공모주의 20%를 재무적투자자(FI)들의 구주로 채우며 기관의 외면을 받은 바 있다.

구주매출이란 기업이 상장할 때 기존 주주가 갖고 있던 주식(구주)을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을 말한다.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회사의 경우 공모 자금이 회사로 유입되지 않고 기존 주주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만큼,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다. 구주 매출이 많으면, 오죽하면 주요주주가 상장 전부터 팔겠느냐며 외부 투자자들도 기업 가치를 낮게 보곤 한다.

밀리의서재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이번 상장에서 구주매출은 기타 개인주주 물량 53만주가 전부다. 전체의 약 7% 수준으로, 벤처캐피털 등 FI들은 구주매출에서 빠졌다. 상장 후 1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차츰 보유 주식을 시장에 내놓을 전망이다.

미래에셋증권이 당기순이익 추정치를 기반으로 공모가를 책정해 불거졌던 고평가 논란도 사그라들었다. 전자책 플랫폼 기업이 지적재산권 활용도가 높은 웹툰 운영사를 비교그룹에 올렸다는 비판도 예스24(053280)를 비교그룹에 넣는 방식으로 지워냈다.

그래픽=손민균

예스24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꼼수’도 취했다. 이번 상장에서 밀리의서재가 내놓은 예상 시가총액은 희망 공모가 하단 2만원을 기준으로 1684억원 정도다. 작년 최초 상장 추진 당시의 희망 공모가 하단 기준 1860억원에서 200억원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기업가치는 작년 제시한 2761억원보다 372억원 늘어난 3133억원이 됐다. 지난해 비교기업으로 삼았던 키다리스튜디오, 디앤씨미디어, 미스터블루 등 3곳 가운데 키다리스튜디오와 디앤씨미디어 2곳을 제외한 대신 예스24(053280)를 넣으면서다.

키다리스튜디오와 디앤씨미디어는 올해 상반기 적자를 냈거나 주가가 지나치게 높아 비교 대상에서 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새로 들어간 예스24는 PER이 43.36배에 달해 같은 비교기업인 미스터블루(17.74배)의 상대적으로 낮은 PER을 상쇄했다.

재산정한 기업가치는 높아졌지만, 밀리의서재와 미래에셋증권은 할인율을 21.7~32.6%에서 38.2~46.2%로 수정해 지금의 희망 공모가가 나왔다. 공모가를 낮춰 투자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기업가치 자체는 내리지 않아 자존심을 지켰다.

덕분에 상장에는 파란불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 환경마저 우호적으로 바뀐 덕이다. 이경준 혁신아이비자산운용 대표는 “요즘 시가총액 기준 2000억원 이하 기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모주를 사는 경향이 있다”면서 “부진했던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기대감도 뚜렷하다. 지난해 밀리의서재는 이익미실현 특례 방식(테슬라 요건)으로 상장을 준비했지만, 이번엔 이익을 낸 기업으로 성장했다. 밀리의서재는 지난해 매출액으로 458억2900만원, 영업이익 41억6900만원, 당기순이익은 133억4900만원을 기록했다.

/밀리의서재 홈페이지

대량의 주식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오버행은 여전히 불안 요소다. 밀리의서재에 먼저 투자했던 HB유망서비스산업투자조합, KB디지털이노베이션벤처투자조합 등 기존 주주들이 가진 주식이 상장 후 1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유통 가능 물량으로 전환되는 탓이다.

밀리의서재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상장일 직후 유통 가능한 주식 수는 203만3340주다. 전체 상장 예정 주식 수(811만1910주)의 25.07% 수준이지만, 1개월이 지나면 이는 40.14%로 늘어난다. 2개월 후에는 45.47%, 3개월 후에는 59.44%로 불어난다.

상장 3개월 만에 60%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에 나올 수도 있는 것으로, 이 경우 주가는 하락할 위험성을 안는다. 밀리의서재 최대주주인 지니뮤직도 보유 주식의 보호예수 기간을 첫 공모 당시 18개월로 잡았지만, 6개월로 줄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HB인베스트먼트와 스틱인베스트먼트, 나이스투자파트너스는 앞선 공모에서 보유 주식의 일부를 상장과 함께 처분하려 했던 만큼, 유통 가능 시점이 되면 곧장 수익 실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IB 업계의 중론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밀리의서재는 벤처금융 기존 주주들이 대거 구추매출에 나서며 기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은 바 있다”면서 “구주매출이 미뤄진 모양새일 뿐 신규 주주의 입장에선 주가 하락 위험을 떠안아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