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 당국이 포용 금융을 확대하라며 은행권을 연일 압박하고 있다. 은행권은 정부의 포용 금융 정책에 적극 호응 중인데, 연체 가능성이 큰 중저신용자 대출을 추가로 확대하면 충당금 확대 등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와 금융 당국은 이달 들어 은행권을 향한 포용 금융 압박 수위를 올리고 있다. 시작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끊었다. 그는 지난 1일부터 사흘 연속 본인 소셜미디어(SNS)에 고신용자 위주로 굴러가는 은행 대출 구조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은행은 완전한 민간 기업이 아니다", "가계 대출이 고신용자라는 안전한 온실 속에만 갇혀 있지 않도록 대출의 구성을 흔들어야 한다"고 했다.

일러스트=제미나이 나노바나나2

이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금융은 가장 잔인한 영역인 것 같다. 금리 15.9%에 달하는 서민 금융 상품이 어떻게 서민 금융이라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에게 "(은행권이) 포용 금융을 얼마나 실현했는지 평가해서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거나, (포용 금융을) 제도적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느냐"고도 했다.

청와대가 움직이자 당국도 나섰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 5곳을 불러 새희망홀씨 대출의 70%가량을 신용 등급 하위 20%에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희망홀씨는 연 소득 4000만원 이하이거나, 연 소득 5000만원 이하이면서 개인 신용평점 하위 20% 차주에게 공급하는 대출이다. 금리는 연 6%대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연말 기준 새희망홀씨 대출 연체율은 1.6% 수준이다. 그러나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 등급 하위 20% 고객들은 이미 은행에 대출 연체를 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고객들에게 새희망홀씨 70%를 몰아준다면 연체율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정부 눈치를 살피며 포용 금융 주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올해 1분기 포용 금융으로 5조6700억원을 공급했다. 이는 올해 목표 총액인 13조2200억원의 43% 수준이다. 3개월 만에 연간 목표의 절반을 달성한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당국이 연일 포용 금융 확대를 압박하자 은행권 내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와 당국의 주문을 충실히 이행할수록 은행을 향한 비판은 늘어나고 요구 사항은 많아지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포용 금융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관치금융 논란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대출 공급과 은행 건전성을 모두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